저금리, 저유가 등 일부 호의적인 경제 환경에도 불구하고 투자와 소비의 빙하기가 이어지면서 한국경제의 저성장 추세가 고착화되고 있다.
경제가 좀처럼 활력을 찾지 못하는 배경에는 우선 내수 부진과 함께 원화 강세에 따른 기업들의 수출 채산성 악화가 주요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성완종 게이트’와 같은 국내 정치적 요인들로 인해 4대 구조개혁 등 정부의 국정동력이 크게 훼손된 것도 경제 전반에 큰 부담을 주는 상황이다. 정부는 조심스럽게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경기부양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 내우외환 한국경제
일본 기업들은 이미 엔저를 무기로 수출품 가격을 낮추면서 해외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올 1분기(1~3월) 중 현대·기아자동차의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일본 도요타는 판매량을 10% 이상 늘렸다.
수출 증가율은 올 들어 계속 마이너스 행진을 거듭하면서 전체 경제성장률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3.1%로 잡고 있지만 일부 연구기관과 경제전문가들은 전망치가 조만간 2%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잇단 금리인하와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가 살아나기에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대 수출시장 중 하나인 중국 경제의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경제난을 극복할 만한 돌파구를 외부에서도 찾지 못 하는 상황이다.
‘성완종 게이트’로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하는 등 국정의 난맥상도 향후 경기흐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정치·사회의 혼란이 세월호 참사 1주기와 맞물려 내수에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달부터 공직사회가 부정부패 척결 등 사정 정국으로 흐르면서 정부의 경제 활성화에 대한 의지가 상대적으로 퇴색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국가 관심사가 온통 ‘게이트’ 등 정관계 비리 의혹으로 집중되다보니 정부의 경제정책이 추진력을 잃어버린 상황”이라며 “정치가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 재정·통화 등 추가 부양책 만지작
정부 안팎에서도 하반기에 경기부양 재원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한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상반기 경기 흐름을 지켜보고 하반기에 필요하다면 경기 보강 수단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기재부가 공식적으로 하반기 성장률 전망치를 내리면 세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추경을 포함한 모든 재정대책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엔저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고민만 거듭하고 있다. 원-엔 환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했다가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당국은 당분간 시장을 모니터링하면서 이달 말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와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회의 결과를 주시할 예정이다. 한 당국자는 “원-엔 환율이 ‘최소 어느 수준은 돼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며 “엔화 절상 속도나 자금의 쏠림현상 등을 면밀히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현 추세가 이어지면 상반기 뿐 아니라 하반기 수출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일본의 양적완화 때문에 한국이 피해를 보는 점을 미국 등 국제사회에 알려 한국이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