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전 한국땅 밟아 편의점 2곳 사장된 탈북여성
인터뷰 말미, 기자는 김은향(가명·47) 씨에게 “어릴 적 꿈은 뭐였어요? 한국에 와서 그 꿈이 좀 가까워진 것 같나요?”라고 물었다.
“솔직히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북한에서는 어린아이에게 ‘꿈이 뭔지’ 묻지 않아요. 그냥 되는 대로 살아야 하는 곳이거든요. 한국에 와서 제일 좋은 것은 ‘앞으로 어떻게 살지’ 꿈꿀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거예요.”
○ 탈북 북송 재탈북… 우여곡절 끝에 밟은 한국땅
김 씨는 중국에 나와 있는 한국 기업의 식당에서 일하며 정보를 얻었다. 몽골 국경을 넘어 14시간 넘게 사막을 걸었다. 2006년 5월 2년여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5개월 후 하나원을 나왔지만 막막했다. 정착금 300만 원이 전부였다. 집앞에는 브로커가 돈을 받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남은 돈은 1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처음 한 일은 막노동이었다. 겨울 내내 공사판에서 못질을 했다. 의류 공장에 일자리를 얻었지만 텃세를 못 이겨 나왔다. 그나마 안정적 일자리를 얻은 것이 2007년 8월. 서울 어린이대공원 근처의 편의점 씨유(당시 패밀리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부터다.
○ 편의점 알바에서 사장까지…다시 재회한 아들
“클렌징 폼 어딨어요? 근데 아줌마 말투가 왜 그래요?”
편의점 일은 막노동보다 몸은 덜 힘들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외래어가 김 씨에게는 외계어였다. 더 견디기 힘든 건 무시와 편견이었다. 매일 밤마다 ‘북한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받는 건 고욕이었다. 그래도 악착같이 견뎠다. 마실 물 살 돈을 아끼려고 편의점에 있는 끓인 물을 비닐봉지에 담아 집에 가져갔다. 한 번은 지하철을 탔다가 그 봉지를 놓쳐 물바다를 만들었다. 바닥에 흐른 물에는 김 씨의 눈물이 절반이었다.
“어떤 한국 사람들은 ‘살기 너무 힘들다’고 얘기하더라고요. 하지만 ‘열심히 살려야 살 수 없는 곳’도 있는데 한국은 훨씬 낫죠. 탈북자들도 죽을 고비를 넘겨 한국에 와놓고 정작 여기에서는 보조금에 의지한 채 하루하루 버티는 거 보면 안타까워요. ‘꿈꿀 수 있는 자유’를 그토록 원했던 사람들인데 말이죠. 저는 앞으로 더 열심히 꿈꾸며 살 거예요. 남을 돕는 것도 꿈 중 하나죠. 남북한 모두에 작은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