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원자력협정 타결’ 이후
그동안 한국 원자력계는 한미의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 공동연구만 끝나면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처럼 설명해왔다. 하지만 미국이 1980년대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파이로프로세싱이 한미 공동연구로 성공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전문가도 많다. 한국은 이번 협정으로 사용후핵연료를 초보적 수준에서 연구할 수 있는 권리를 겨우 얻었을 뿐이다. 또 10년 공동연구 종료 시점인 2020년에 파이로프로세싱이 성공하더라도 그 결과물(재처리된 핵연료)을 이용할 고속증식로(연료를 태울 새로운 원자로)에 대해선 아직 개발 검토도 하지 않은 상태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3기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는 매년 750t. 처분 방식이 정해지지 않아 원전 내외부 임시 저장수조와 건식 보관용기에 쌓아두고 있다. 내년 고리원전(부산 기장군)부터 포화가 시작된다. 저장 간격을 촘촘하게 하거나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다른 발전소로 일부를 옮기는 ‘확장공사’를 해도 임시대책일 뿐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예정대로 확장공사를 해도 2024년 한빛원전(전남 영광군)부터 저장능력이 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원자력 전문 인력 확보도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외교부는 한미 원자력협정 타결 후속 작업으로 현재 과(課) 수준인 군축비확산 부서를 국(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외교부와 미국 에너지부 차관급이 수석대표인 고위급 위원회가 설치되는 만큼 원자력과 비확산 전담부서를 보강하기 위해서다.
미 국무부의 국제안보비확산국처럼 순환근무 원칙을 적용하지 않고 원자력 전문가로 키우는 방안 등도 거론된다. 하지만 미국처럼 비확산 부서를 운영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더 크다. ‘원전 마피아’로 악명이 높던 원자력계가 비확산 부서의 뜻대로 호응할지 확신이 없고 산업계와 연대감이 높은 경제 부처들과의 기 싸움에서 버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