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 논설위원
왜 하필 베트남이었을까.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 인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회장의 경남기업이 1조2000억 원을 들여 하노이에 지은 72층짜리 초고층 건물 ‘랜드마크72’는 성 회장의 야심 찬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사전분양에 실패하면서 경남기업의 발목을 잡는 화근(禍根)이 됐다. 이 건물 시공사업에서 상당액의 비자금이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남기업에서 조성된 비자금은 여권 실세들의 발목을 붙들어 매는 쇠사슬이 돼가고 있다.
여권 접촉과 3차 워크아웃
베트남은 ‘박연차 게이트’에서도 빠짐없이 등장했던 무대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2006년 베트남 정부가 발주한 30억 달러(약 4조1400억 원) 규모의 화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를 따냈다. 그는 쩐득르엉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건의해 2003년 10월 부산∼호찌민 직항로를 개설했다. 베트남에서 국가원수급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 회장이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8월 개최한 랜드마크72 기공식에도 당시 여권인사들은 물론이고 베트남의 국무위원급 인사 7, 8명이 참석했다. 두 게이트에서 베트남은 빼놓을 수 없는 무대다. 이명박 정권 실세들을 겨냥한 듯한 포스코의 해외자원개발 비리 의혹도 베트남에서 조성된 포스코건설 비자금이 수사의 단서가 됐다. 베트남이 연이어 세 정권 실세들의 무덤으로 등장하는 징크스가 되고 있다.
그러나 박 회장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던 2009년 대검찰청 특별조사실에서 “노 전 대통령 쪽에서 100만 달러를 먼저 요구했고, 500만 달러도 노 전 대통령을 보고 건넨 것”이라고 진술했다. 박연차 게이트는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서갑원 전 의원, 정상문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의 유죄 확정 판결과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로 막을 내렸다.
세 정권 실세들 무덤 베트남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 ‘성공과 좌절’에서 부정부패와의 싸움과 관련해 “제 딴에는 새집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쓰레기들이 많이 있었다”면서 “다시 수준을 낮춰 구시대의 막내, 마지막 청소부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박 대통령은 그해 패션쇼를 전후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도 예외 없이 파헤치겠다는 각오를 해야 베트남 징크스에 끌려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