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성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
이번 협정 타결을 지켜보면서 미국 전력 전문가 ‘워커리 시슬러’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시슬러 박사는 1948년 5월 북한이 일방적으로 송전을 중단했을 당시 미국 정부에 발전군함 파견을 건의했던 인물이다. 당시 미국은 2만 kW급 자코나호와 8000kW급 엘렉트라호를 급파했고 우리는 긴박한 국가적 전력난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 후 시슬러 박사는 전력 부족으로 전후 복구에 어려움을 겪던 이승만 대통령에게 원자력 개발을 조언한다.
“우라늄 1g이면 석탄 3t의 에너지를 냅니다. 석탄은 땅에서 캐는 에너지이지만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는 에너지입니다.”
한편으로 원자력은 핵무기 개발의 위험 때문에 국제기구의 통제와 원천기술 제공국인 미국과의 까다로운 협정을 통해 규제받고 있는 냉엄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이번 협정 타결은 원전 수출과 원자력 연구개발 분야의 자율과 실리를 확보했다는 의의를 갖는다. 나아가 차관급 상설협의체를 통해 우라늄 농축, 사용후연료 관리, 원전 수출 증진 등 주요 사안의 상시협의 체제를 갖췄다는 점에서도 큰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한미 원자력협정은 이제 양국의 비준 절차를 앞두고 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협정안을 상하 양원 외교·외무위원회에 송부하고 회기 중 90일 내 반대 결의가 없으면 자동 비준된다. 우리는 이 기간 중 ‘골드 스탠더드’ 조항을 고수하는 미국 의회 안의 핵 비확산 강경론자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외교적 노력을 늦춰서는 안 된다.
현재 한국은 2009년 우리 기술로 만든 상용원전 APR1400의 아랍에미리트 수출, 2010년 연구용 원자로의 요르단 수출에 이어 올해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스마트원전을 수출하는 등 원전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67년 전 시슬러 박사와의 인연으로 시작된 우리 원자력의 역사가 이번 한미 원자력협정을 계기로 대한민국 원전 산업, 무엇보다 선진 수준의 원전강국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한 걸음 나아가 우리 원자력이 67년 전 북한의 단전으로 겪어야 했던 전력 산업의 암울했던 역사의 굴레를 넘어 통일에 대비한 예비 전력원을 확충하고 평화통일 기반 구축의 새 장을 여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