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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그녀들의 나와바리 경쟁

입력 | 2015-04-25 03:00:00


조폭 영화의 대사 중에는 ‘나와바리(なわ-ばり)’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새끼줄로 경계를 가른다’는 뜻의 일본말로 조폭들 사이에선 관할 구역을 의미한다.

통념상 나와바리는 수컷의 전유물이다. 인간은 물론 사자나 침팬지, 개에 이르기까지 수컷은 자기 영역에 누군가 침입하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안전이 위협받을지 모른다는 경계심에서다. 남자의 영역은 대개 물질적 경계로 갈라진다. 대상에 대한 통제권이나 역할 같은 게 대부분이다.

여자들 사이에도 나와바리가 있을까?

있다. 남자들이 규칙 또는 힘겨루기로 각자 영역의 경계를 정하는 데 비해 여성들은 ‘돌봐줌’으로 관계 영역을 표시한다. 관심을 주고받으며 정서적으로 그 밖의 사람들과 경계를 짓는 것이다.

가정에서 여성들의 나와바리 신경전이 벌어지는 대표적 무대가 바로 ‘주방’이다.

아들 부부가 휴일 저녁을 함께 먹으려고 일찍 도착하면 어머니는 점심부터 차리려 든다. 나중에 아들 부부의 귀갓길 다툼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며느리가 화를 낸다. “내가 점심을 굶기기라도 했단 말이야?” 아들도 어머니의 순수한 마음을 지키려고 언성을 높인다.

따지고 보면, 어머니의 ‘나와바리 본능’에서 비롯된 일이다. 어머니의 무의식은 아들이 여전히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고 싶어 “먹고 왔다”는 며느리의 만류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영역 구분은 ‘배타적 권리 또는 공간’을 설정해 (외부인은)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질적인 음식 또한 마찬가지다.

자존심 강한 어머니라면 며느리가 만들어온 음식 또한 ‘침범’으로 간주할 수 있다. 풀어보기만 하고 냉장고에 넣고는 손수 준비해 놓은 재료로 며느리와 함께 저녁 준비를 시작한다.

어머니의 의지는 며느리 또한 당신의 방식과 입맛의 나와바리로 편입시키겠다는 쪽으로 이어진다. 한데 음식은 지역마다, 집안마다 고유한 문화이며, 문화에선 우열을 따지기 어렵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무시당했다며 소외감을 느낄 경우 고부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제주도를 비롯해 3대가 모여 사는 일부 가정에서 부엌을 두 개 만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가정의 평안 중 상당 부분은 남자의 어깨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공존의 지혜를 발휘하려면 구한말 청과 일본, 러시아 등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독립의 길을 모색하던 애국지사들만큼이나 균형 잡힌 관점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한 걸음 물러나 살펴보는 냉철함이 먼저다. 단순히 예의나 시시비비 차원에서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