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제주샘주’ 김숙희 대표
제주샘주 김숙희 대표는 제주전통 술인 고소리술과 오메기술을 현대인의 입맛에 맞춰 재탄생시켰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22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제주샘주(酒)’ 양조장에서 제주지역 전통 증류주인 ‘고소리술’(제주도무형문화재 제11호)을 시음했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입 안이나 목이 따가운 일반 소주와는 전혀 달랐다. 도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오메기술’(제주도무형문화재 제3호)은 향긋한 와인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좁쌀로 만들었기에 텁텁할 거라는 예상을 확 뒤집었다.
오메기술, 고소리술은 제주의 대표적인 전통 술이지만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고 정체불명의 ‘좁쌀막걸리’가 오메기술로 둔갑하기도 했다.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민속마을에 기능보유자가 있지만 대량 생산이 안 돼 일반인은 구매할 수 없었다. 제주샘주 김숙희 대표(50·여)는 끈질긴 집념으로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현대인 입맛에 맞게 재탄생시켰다.
“양조장을 인수할 당시 공장장은 제조 과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고 술맛을 조금 바꿔보자고 제안해도 묵묵부답이었어요. 직접 몸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어요. 전문가를 초빙해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보니 오히려 술 맛을 정확히 알 수 있었어요. 시음을 하다 보니 지금은 석 잔까지 가능해요(웃음).”
소주를 내리는 도구를 ‘소줏고리’라 하는데 제주에서 이를 ‘고소리’라 부르면서 고소리술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과거 논농사가 어려웠던 제주지역에서 비교적 흔한 좁쌀을 활용해 술을 빚던 것이 전통이 됐다. 증류 기술은 13세기 말 중국 원나라 직할지인 탐라총관부가 들어오면서 몽골에 의해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개성소주, 안동소주, 제주소주(고소리술) 등 국내 3대 명품 소주 생산지가 몽골 세력의 주요 거점이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고소리술이 탄생하려면 먼저 오메기술를 만들어야 한다. 좁쌀을 반죽해 끓는 물에 삶아서 건져 낸 ‘오메기떡’을 문질러 누룩가루와 지하수로 발효시키면 상층부에 청주가 생기고 하층부는 막걸리가 된다. 상층부 청주를 고온에 증류한 뒤 1년가량 숙성시키면 전통 소주인 고소리술이 탄생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좁쌀 53%, 쌀 49%의 비율로 술을 빚었는데 지금은 좁쌀 10%, 쌀 90%의 비율로 만들어요. 좁쌀이 귀하기도 하지만 쌀의 비율을 높이니까 술맛이 훨씬 부드러워졌어요. 소비자 입맛을 잡기 위해서는 술 맛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메기술에 첨가하는 제주조릿대의 비릿함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결국 개똥쑥을 첨가해 해결했어요. 대량생산을 위해 기계 설비를 활용하지만 전통 기법을 보존하는 부분에도 공을 들여요.”
지난해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하는 ‘찾아가는 양조장’이 된 후 제주 전통 술을 체험하려는 탐방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40명 이상 단체의 체험행사가 50여 회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샘주는 29도, 40도의 고소리술과 13도, 15도의 오메기술을 각각 생산하고 있다. 최근 산양산삼, 구기자 등을 넣어 만든 45도의 ‘세우리’ 술을 내놓기도 했다. 제주샘주는 연간 고소리술 4만8000L, 오메기술 19만2000L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김 대표는 “외국의 위스키, 코냑, 보드카 등도 전통 증류식 소주와 비슷한 방식으로 만든다. 전 세계적으로 희석식 소주가 대중적인 술로 인정받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 고구마, 돼지감자 등에서 얻은 에틸알코올 95%의 주정에 감미료와 물을 섞는 희석식 소주에 비해 증류식 소주는 재료, 제조기간 등으로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쌀과 좁쌀 600kg을 들이면 고소리술 562L 정도가 나올 정도다. 시장 진입에 어려움이 있지만 전통의 명맥을 잇고 몸에 이로운 술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