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81년만의 대지진]‘비극의 땅’ 카트만두 현지 표정
네팔 수도 카트만두 북서쪽 70km에서 발생한 이번 강진 피해는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신시가지 고층건물보다 흙벽돌 건물과 주택이 많은 구도심 지역에 집중됐다. 현지 교민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당시의 긴박함을 전했다. 카트만두에서 17년째 숙박업을 하고 있는 김진 씨(44)는 26일 본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라고 했다. 김 씨는 “5분 전에도 여진이 있었다. 전화도 자주 끊기고 전기 공급도 안 돼 발전기를 갖춘 집만 전기를 쓸 수 있다”며 “마당에 텐트를 치고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치안은 괜찮은 편이지만 대형마트 등이 여진을 이유로 문을 닫아 식료품을 구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16년째 현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미향 씨(53·여)도 “교민들은 한국대사관에서 지정한 공터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며 “식수와 전기가 가장 급하다”고 전했다.
현지 교민 약 650명은 대부분 무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네팔 관광 성수기인 4, 5월을 맞아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선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고 일부는 아직까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김진 씨는 “카트만두 서쪽 고르카 지역으로 떠난 한국인 2명이 행방불명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며 “불확실한 정보가 많아 무엇을 믿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BBC와 AP 등 외신들도 카트만두 지역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생생히 전했다. 아누파 셰스사 씨는 “모든 것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산데시 카지 슈레스타 씨는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가 호텔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목격했다”며 “이웃들과 돌더미를 헤치며 구조작업에 나섰으나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미국 관광객 롭 스틸레스 씨도 “지진이 많은 로스앤젤레스 출신이라 평소 훈련받은 대로 호텔 밖으로 뛰쳐나왔는데 곧 호텔이 무너져 내렸다”며 “길거리에 주차된 자동차 위로 전신주가 쓰러졌다. 그 와중에 15분 동안 4차례의 여진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현지인 사이자 구룽 씨는 TV를 보고 있다가 집 안의 집기들이 모두 떨어져 내리는 진동에 놀라 밖으로 탈출한 뒤 이웃들을 발견하고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손을 잡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는 “주변 집들이 무너져 내리고 상하수도관이 터지면서 물길이 하늘로 치솟았다”고 증언했다.
카트만두 노르비크 국제병원 주차장은 임시 병동으로 변했다. 얇은 매트리스가 깔린 주차장에는 환자 수십 명이 들어찼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부상자들을 치료하기에 바빴다. 의료진은 피범벅이 된 시민들의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줬다.
네팔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야간 수색작업까지 펼치고 있다. 건물 잔해를 헤치고 1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려는 구조작업은 장비 부족으로 맨손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 교민은 “오늘자 현지 신문에 ‘정부가 없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정부 차원의 구호작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외교부는 25일 카트만두에서 북쪽으로 70km 떨어진 어퍼 트리슐리 지역 댐 공사 기술자가 찰과상(경상)을 입었으며 26일에는 카트만두 북부를 여행하던 50대 부부가 낙석에 맞아 남편은 손이 골절되는 중상을, 아내는 다리에 경상을 입는 등 총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카트만두 시내 한국대사관은 담이 무너진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카트만두를 중심으로 한국인 교민은 650여 명이 살고 있는데 아직 사상자는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하지만 800∼1000명의 여행객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돼 추가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권재현 confetti@donga.com·황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