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민 전 빅이슈코리아 편집장
보통 연예인을 말할 때, ‘이미지로 먹고산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가수는 향후 직업 활동을 계속하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흠집을 얻은 셈이다. 나 역시 처음 기사를 보고는 ‘가수가 너무 성급하게 활동 재개를 결정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사실 관계가 어떻든 도덕적으로 비난의 소지가 있는 일을 벌인 것은 분명하니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의 진짜 사용 가치는 노래하고 춤추는 것. 그 사용 가치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이미지만 보고 사용 가치를 따지지 않았다가 손해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재작년의 일이다. 서울 합정동 쪽에 집을 구했던 것은 분위기 때문이었다. 볕이 좋은 오후에는 예쁜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책을 읽으리라. 거리에는 싱그러운 젊음이 넘쳐 나고, 골목마다 보석 같은 맛집이 즐비하겠지? 그런 달콤한 기대로 통장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얼마 전 한 정치인이 자신이 지사로 있는 도내에서 무상급식을 중단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내 입장에선 걱정이 컸다. 나는 급식 대신 도시락을 싸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 밥때가 돼 아이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으려면 초라한 내 반찬을 내놓기가 힘들었다. 함께 모여 먹는 아이들이 아무도 내 반찬을 건드리지 않았을 때의 그 모멸감이 싫어서, 혼자서 먹거나 일부러 밥을 먹지 않는 날도 많았다. 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는 게 너무 창피해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울며불며 떼를 쓴 기억도 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지만, 친구들에게 가난을 들키는 일은 왜 그렇게 부끄럽기만 하던지. 내가 유독 예민하고 소심했던 탓이겠지만, 10대 감성이 이와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현장에 있는 교사들의 말을 들어 보면 아무리 정책적으로 보완해서 숨기려 해도 티가 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가난하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부모 앞에서 울고불고 하다가, 축 처진 어깨로 등교하는 아이들이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사용 가치로 돌아가 보면, 정치인의 사용 가치는 국민을 행복하게 해 주는 데 있다. 그런데 무상급식 중단이라는 정책 결정은 그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국민에게 창피함이나 상처를 안길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단 한 가지 정책으로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 하지만 이 정책이 크든 작든 해당 정치인의 사용 가치에 흠집을 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그 정치인의 결단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엇갈린다. 찬성 여론의 출처가 정치인에 대한 이미지인지 해당 정당에 대한 지지에서 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비난 일색이던 가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용 가치를 고려해 본다면 조금은 다른 생각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택한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늘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점은 이 선택을 더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 보니 선택은 대충 하고, 나중에 ‘거 봐, 결국 이렇게 되잖아’라며 자조한다. 하지만 가장 적합한 기준을 들이대려는 노력 없이는 선택지도 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실력에 더 비중을 두고 연예인을 좋아한다면, 노래 잘하는 가수와 연기 잘하는 배우를 더 많이 볼 수 있을 터. 능력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정치적 지지를 선택한다면, 밥이든 나물이든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이영민 전 빅이슈코리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