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엔 환율 900원 붕괴]
원-엔 환율이 28일 장중 100엔당 900원 선 밑으로 떨어졌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과거보다 훨씬 스케일이 큰 ‘4차 엔저’
현재의 엔화 약세는 오랫동안 큰 규모로 진행된 것만 따졌을 때 1980년대 이후 한국경제가 경험한 네 번째 현상이다. 지난 1차(1988∼1990년), 2차(1995∼1997년), 3차(2004∼2007년) 엔저는 수출 감소와 경상수지 적자 확대, 금융권의 외화 부족 사태를 촉발하면서 실물과 금융 양면으로 경제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기간도 길다. 과거의 엔저 국면은 한국에 무역적자 확대와 금융불안 가중이라는 이중고를 안긴 뒤 2, 3년을 고비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의 통화 완화 정책이 앞으로도 한참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수출과 수입이 같이 줄어드는 한국의 ‘불황형 흑자’로 인해 원화 강세 현상도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결국 2013년에 시작된 이번 엔저가 앞으로 최소 2, 3년은 더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일본 중앙은행이 물가상승률 2%를 달성할 때까지 양적 완화를 지속하겠다고 밝힌 만큼 2017년까지는 현재의 통화 완화 정책을 이어 나갈 것”이라며 “현 추세대로라면 내년에 원-엔 환율 800원대를 지키는 것도 불안해 보인다”고 말했다.
○ 수출 감소 폭 점점 확대
정부는 엔화 약세가 한국경제의 위험 요인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국가적인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 경제학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글로벌 자금의 유입이 가파른 원화 강세를 일으키면서 수출이 이미 급감하는 와중에, 미국의 출구전략으로 자본 유출까지 현실화될 경우 경제 펀더멘털이 좋은 한국도 안심할 처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국의 대응책에 따라 원-엔 환율의 하락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박정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 금리인상이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자본 유입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원화 강세는 대세적인 흐름이 될 것”이라며 “금리인하나 해외투자 확대 등의 정책 대응을 한다면 엔화 약세는 다소 누그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정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