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적 소풍날
꽁보리밥에 양념 친 날된장을 반찬으로
도시락을 싸갔는데
다른 친구들 모두 쌀밥으로 싸왔거니 하고
산모퉁이에 숨어서 점심을 먹었다
이 기억만은 선연한데
그날 그 소풍 간 곳이 어디였는지
그날 어머니는 무슨 색깔의 옷을 입으셨는지
그날 아침밥은 무슨 반찬으로
어느 숟가락으로 밥을 먹었는지
그날 내가 사자표 가루치약으로
양치질을 했는지 어쨌는지
그날 우리 집 뜨락에
철쭉이 몇 송이나 꽃봉오릴 매달았는지
그날 우리 집 앞을 어떤 자동차가
몇 대나 지나갔는지
그날 신문에 무슨 기사가 실렸었는지
그날 또 어머니가
어떤 종류의 눈물을 흘리셨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다
시를 옮긴 ‘권투선수 정복수’는 상희구의 ‘대구’ 시리즈 시집 중 한 권으로 ‘대구의 사람’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지방도시 대구를 무대로 1950년대를 살아간 사람들을 시인은 하나하나 되살린다. 대구사람 상희구가 그 시절, 그 사람들을 육정(肉情)에 가까운 사랑을 담은 사투리로 불러내는 건 단순한 향수로서가 아니다. 차라리 그는 외치고 싶을 테다. ‘응답하지 마라, 1950년대!’ 그 시절의 서민 생활은 오늘에서 보자면 빈민급이다. 하물며 서민도 못 되는 사람들의 삶은 어땠겠는가. 미친 사람, 오갈 데 없는 사람, 굶주리는 사람이 흔해터진 그 시대의 특색은 한마디로 ‘지지리도 가난함’이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 이름을 날린 사람, 선택받은 사람도 있어, 그리고 그들이 바닥의 사람들을 저버리지 않아 시절을 넘기는 데 디딤이 됐을 테다. 생각느니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지리고 비리고 누린 가난의 냄새여! 비애의 ‘쩐’내여! 진저리치면서도 한 가닥 시인의 마음을 당기는 끈은 선린(善(린,인))의 추억이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