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日총리 訪美] 홀로코스트 박물관서 생존자 면담 “여러분 탈출시킨 일본인에 자부심” 대학 3곳에 160억원 연구지원도
미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과거사 물타기’ 전략이 노골화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27일(현지 시간) 보스턴 하버드대 강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채 이날 오후 워싱턴으로 이동해 알링턴 국립묘지와 링컨 기념관,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잇달아 방문했다. 위안부 동원, 식민지배, 침략 등 자국의 과거 행위는 사과하지 않으면서 타국의 전쟁 관련 추모시설을 찾아 ‘역사를 기억하자’ ‘평화를 지키자’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강조한 것.
알링턴 묘지 참배로 제2차 세계대전 발발에 대해 미국 측에 사과한다는 메시지를 거듭 표명하고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선 자신의 과거사 왜곡 행보에 비판적인 미국 내 유대계를 끌어안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예정에 없던 링컨 기념관을 방문한 것은 노예 해방을 일궈낸 링컨 전 대통령의 통합과 화해 정신을 자신의 행보와 연결시키려는 정치적 노림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어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찾아 45분간 추모했다. 특히 이날 방문에는 1940년 당시 리투아니아 주재 일본대사관의 공사였던 스기하라 지우네(杉原千畝) 씨로부터 비자를 발급받아 나치 수용소에서 탈출했던 줄리 바스크, 마샤 네온, 레오 말라메드 씨 등 홀로코스트 생존 유대인들을 초청하는 이벤트도 마련했다. 스기하라 씨는 당시 2000여 명의 유대인에게 비자를 발급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스기하라 씨의 행동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낀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이 수천 명의 목숨을 살렸다”고 말했다. 위안부 강제 동원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제가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인도주의적 조치에 나섰다는 점을 강조한 것. 그러면서 박물관 정문에 걸려 있는 ‘네버 어게인(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이라는 현수막을 언급하며 “(저 문구처럼) 엄숙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방문해 일본 현대정치, 외교에 관한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MIT와 컬럼비아대(뉴욕), 조지타운대(워싱턴)에 각각 500만 달러(약 54억 원) 등 총 160억 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고 일본 산케이신문이 전했다. 이는 미국 학계에 지일파를 늘리고, 일본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