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개혁의 어려움 보여준 중앙대
박 이사장이 “이름만 빼고는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했을 때부터 교수 등 학내 구성원과의 충돌은 예고된 것이었다. 교수연봉제 도입, 단과대 축소, 학과제 폐지 등 개혁조치를 밀어붙이고 있던 그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대학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대목이 ‘의사결정 과정’”이라고 말했다. 기업 같으면 한 달이면 결정 내릴 일을 구성원들의 합의를 도출한다며 한정 없이 시간을 끌더라는 것이다.
대학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관해 피터 드러커는 1997년 “캠퍼스는 유물이 될 것이다. 대학은 살아남지 못한다. 그 변화는 (중세) 인쇄술에 비견될 정도로 거대하다”고 예견했다. 예견은 실현되고 있다. 대학은 캠퍼스가 있어야 하며 학생은 강의실에서 교수에게 배워야 한다는 관념은 사라지고 있다. 뉴욕대 등 미국 유수의 대학들이 온라인 학위 과정을 개설했다. 현재도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수준 높은 무크(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 강좌가 1만 개가 넘는다.
한국 대학들, 아니 교수들이 이런 변화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모른 체한다. 교수들은 툭하면 “대학이 취업사관학교냐, 고시원이냐”고 묻는다. 물론 대학의 본질은 연구와 교육이지만 그렇다고 세상과 고립된 갈라파고스가 아니다.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며 오히려 변화를 선도해야 한다. 그 사명이 한때는 민주주의 지킴이 역할이었다. 지금 대학에 대한 사회의 요구는 자격 있는 직업인을 길러내는 것이다. 대학이 취업준비기관은 아니지만 많은 학생과 학부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無비전이 한국 대학의 문제
대학을 지식의 상아탑이라고 하는 것부터가 낡은 개념이다. 지금처럼 지식의 유효기간이 짧고 인터넷을 통해 언제든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코끼리 엄니로 만든 탑이라니…. 결국 중요한 것은 대학이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느냐다. 미국 학부중심대학(리버럴아츠칼리지)처럼 글쓰기를 포함한 인문교육을 강화하는 대학도 있을 수 있고, 직업교육을 잘하는 대학도 있을 수 있다. 어째서 한국 대학은 모두 ‘창의적 인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한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몇 개 대학은 훌륭한 직업인을 배출하겠다고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이들 가운데 학생이 어떤 대학을 선택하는지 보면 대학의 미래가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