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국산화 ‘뚝심 40년’… 10여국에 약-원료 수출
류덕희 경동제약 회장은 “찾으면 길이 있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해결된다”고 말했다.
김상철 전문기자
류덕희 회장(77)은 좋은 약을 싸게 공급하겠다는 일념으로 경동제약을 창업한 뒤 수입약품 국산화에 나섰다. 골리앗 같은 다국적 제약회사가 특허를 무기로 시장 진입을 막는 바람에 국내 간판급 제약회사들조차 기술 제휴나 합작을 통해 약품을 만들던 때였다.
○ 국산 무좀 진균치료제 첫 개발
그는 굴하지 않고 무모하게 보이는 제약 사업에 도전해 어려움을 하나씩 이겨냈다. 다른 회사가 수입약품을 팔 때 원료를 들여와 국산 약을 만들고, 다른 회사가 의약품 원료를 수입할 때 원료를 자체 개발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제약업계에서 세 번째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미련 없이 입대한 그는 제대 후 부친의 도움을 받아 도장과 인주를 넣는 플라스틱 용기를 위탁 생산해 결혼식 답례품으로 파는 사업을 했다. 총판들은 물량을 조금씩 늘려 가져간 뒤 대금을 떼먹고 잠적했다. 사기를 당해 투자비도 몽땅 날렸다.
“사업을 하려면 그 분야를 잘 알아야 합니다. 특히 경험하는 게 중요해요.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보거나 들어 아는 얕은 지식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실패하지 않으려면 경험과 지식을 함께 갖춰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공무원으로 일하다 사업 실패에 따른 스트레스에 장출혈까지 겹쳐 입원했다. 병문안을 온 친구가 “제약업을 함께 해 보자”고 제안했다. 기업가의 꿈을 버리지 못한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친구들과 1969년 ‘선경제약’을 세워 부사장을 맡았다. 약품 총판사업으로 짭짤한 수익을 냈으나 친구와 회사 경영에 대한 견해차가 커 그만뒀다.
6년간 제약 사업을 경험한 류 회장은 1975년 동료 4명과 자본금 500만 원으로 ‘유일상사’를 설립했다. 직원과 같은 액수의 월급을 받고 직원들에게 주식도 나눠주는 등 임직원이 함께 키우고 성과도 나누는 공동체 같은 회사를 지향했다.
서울 광화문 인근 사무실에 책상과 전화 한 대만 놓고 수입약품 파는 일을 시작했다. 3개월 뒤 인천 부평공장과 부도난 제약회사의 의약품 제조업 허가권을 사들였다. 회사 이름도 ‘경동제약’으로 바꿨다. 약품 제조에 나서 1976년 무좀 진균치료제(톨나프 액)를 처음으로 내놓았다. 종합비타민제 등 연질캡슐 제품에 이어 100% 수입에 의존하던 고혈압 치료제 등 주사제도 개발해 출시했다.
“초기에 수입약품의 국산화가 가능하겠느냐는 의견이 많았어요. 누군가 먼저 만들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설득했죠.”
류 회장은 주사제를 개발하면 임상시험 대상을 자처해 먼저 맞아 보는 등 연구에 온 힘을 보탰다. 약품 국산화에 필요한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남미까지 찾아가고, 기존 거래처 외에는 팔지 않는다는 독일 제약회사를 끈질기게 설득해 원료를 구입하기도 했다. 약 생산 품목이 외용제에서 캡슐제, 주사제, 정제 등으로 늘어나면서 약국 중심이던 거래처를 병의원으로 확대했다.
○ 다국적기업 “로열티 팔라” 제의 거절
경동제약은 일본 파키스탄 등 10여 개국에 의약품 원료와 약을 수출하고 개량 신약을 내놓는 중견 제약회사로 성장했다. 올해 9월 창립 40주년을 맞는다.
“대기업이라고 모든 제품을 만들 수는 없어요. 틈새시장은 어디든 있어요.”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시장이 크지 않더라도 꼭 필요한 약을 만들어 강한 치료제 전문 제약회사로 키우겠다는 류 회장의 다짐은 현재진행형이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