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 ‘화장’의 한 장면.
이어지는 가사는 나 같은 아저씨들의 입이 쩍 벌어질 지경이다. “허리는 너무 가는데 힙이 커. 맞는 바지를 찾기 너무 힘들어. 오예! 앞에서 바라보면 너무 착한데 뒤에서 바라보면 미치겠어. 오예!”
오호 통재라. 일찍이 공자께서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결코 없다’는 뜻으로 ‘불혹(不惑)의 나이’라 이르신 마흔 살을 훌쩍 넘은 박진영이 딸뻘인 여성의 뒤태를 보고 후끈 달아오른 거다. 이후 박진영은 “널 어쩌면 좋니. 너를 어쩌면, 널 어쩌면, 널 어쩌면 좋니” 하면서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다 끝내 “어머님이 누구니? 도대체 어떻게 너를 이렇게 키우셨니”라는 가사로 아쉽게 끝을 맺는다.
마흔네 살 유부남 박진영이 이런 저질스러운 노래를 대놓고 부르는 일이 주접떠는 거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나는 오히려 욕정의 우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자기 내면을 대놓고 드러내는 박진영이 멋지다. 그는 일관되게 외친다. “그녀의 입술은 맛있어. 입술은 맛있어. 10점 만점에 10점!”(박진영 작사 작곡 ‘10점 만점에 10점’ 중) 그가 주장해 온 ‘딴따라 정신’의 본질은 바로 성(性)에 대한 이런 민망할 만큼 솔직한 태도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난 생각해본다. 그래. 나, 아저씨다. 나, 섹스하고 싶다. 뭐가 잘못됐니?
솔직함은 그 자체로 창의성(creativity)이다. 예술가를 예술가이게 만드는 핵심 유전자는 용기에 가까운 솔직함이다. 그래서 때로 예술가는 본능에 미쳐 도덕을 초월한 듯하게도 보인다.
‘시계태엽 오렌지’(1971년) ‘샤이닝’(1980년) ‘풀 메탈 자켓’(1987년) 같은 명작들을 연출한 영화계의 ‘마스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1999년 3월 7일 71세로 사망하기 바로 며칠 전까지 ‘아이즈 와이드 셧’이란 문제작을 찍었다. 이혼 전의 톰 크루즈, 니콜 키드먼 부부가 전라로 출연해 음모까지 노출했고 집단 성교 장면까지 등장하는 이 진중하고도 논란적인 작품을 통해 일흔한 살 노감독이 집요하게 탐구했던 메시지는 바로 ‘질끈 감은 눈(아이즈 와이드 셧)을 떠라. 그리고 네 마음속에 숨은 성본능과 마주하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남자들이 한 번쯤 함께 자보고 싶다는 망상을 품어보는 여배우 니콜 키드먼은 영화 말미에 이런 파격의 대사를 외친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어. 바로 섹스야!”
옳다. 나를 포함해 이 세상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수컷들은 죽을 때까지 섹스하고 싶다. 교미 중 암컷에게 영양보충을 위한 먹이로 자기 몸을 내어주는 수사마귀는 암컷에게 머리를 통째로 뜯어 먹히는 순간에도 필사적으로 암컷의 배에 정액을 주입한다.
아쉽게도 원작인 김훈의 동명 소설에 담긴 사색적 깊이를 담아내는 데 영화는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여든 살 임권택은 섹스 앞에 솔직하단 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거장이다. 번식욕망은 신의 은총이요, 원죄다. 향기요, 악취다. 짐이요, 날개다. 이 영화는 여든 살 임권택의 불타는 성욕이다.
박진영과 임권택. ‘딴따라’와 ‘거장’이 입을 모아 말한다. 질끈 감은 눈을 뜨자.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섹스니까.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