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국 외교 활동 5년… 이젠 회의 소집자 수준 넘어 실질적 기여로 역할 늘릴 시점 한국이 실력 펼칠 수 있는 분야… 군사안보보다 개발협력 정부-민간 힘 모아 적극 나서면 개발협력이 외교의 꽃 될 수 있다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
중견국의 역할에는 이해당사자들을 모으는 소집자, 소통과 협력의 촉진자, 이해 상충의 조정자, 갈등의 중재자, 논의 과제를 발굴하는 의제설정자 등 다양한 것들이 있다. 한국은 지난 5년간 주요 20개국(G20), 핵안보정상회의, 국제전기통신연합 전권회의, 물 정상회의 등 주요 국제회의를 주관하는 소집자의 역할에 주력해왔다. 그러다 보니 이제 한국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라 국제회의의 나라라 불릴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소집자 수준을 넘어 국제 문제의 해결에 실질적 기여를 하는 등 중견국 외교의 내실을 기할 시점에 왔다.
그렇다면 어떤 영역에서 한국의 중견국 외교가 빛을 발할 수 있을까. 전통적인 군사안보 영역은 한미동맹에 근간을 두고 있는 한국이 나서기에는 민감한 만큼 자연재해나 질병 확산에 대응하는 인간안보 분야가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에볼라가 확산될 때 비록 소수이긴 하나 민·군 구호대를 서아프리카에 파견하여 국제사회의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보다 상시적으로 한국이 주도해 중견국 외교를 잘 펼칠 수 있는 분야는 뭐니 뭐니 해도 개발협력이다.
그러나 개발협력 분야에서 중견국 외교를 충실히 가동하려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가령 한국의 무상원조의 경우 분야별로 구체적 목표, 실행 원칙, 성과 평가 등 체계를 보다 면밀히 갖춰야 한다. 원조의 비전과 규범을 정립하는 데서도 한국형 모델을 만드는 데 너무 집착하기보다는 글로벌 원조 거버넌스의 축적된 경험과 개혁 방향을 찬찬히 배울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눈여겨볼 것은 올 9월 유엔 개발정상회의에서 지난 15년간의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대체할 ‘포스트 2015’ 개발협력이 어떻게 정립되느냐이다.
작년 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발표한 종합보고서 ‘2030년까지 존엄을 향한 길’은 존엄, 인간, 번영, 지구, 정의, 파트너십 등 6가지 요인의 통합을 강조한 바 있다. 제시된 예비 의제들은 MDGs에서 추진되었던 빈곤문제와 보건 등의 기본권을 넘어서 형평성 있는 교육, 포용적 성장 등 다양한 목표를 담고 있다. 한국의 발전 경험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공헌할 기회가 많아 보인다. 또한 투명한 자료의 공유 및 참여적 모니터링을 강조하고 있어 한국 시민단체들이 기여할 것도 많다. 무엇보다 월드프렌즈 KOICA(코이카) 봉사단 같은 한국 청년들의 해외 봉사는 개발협력에 대한 후속 세대의 헌신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좁은 국내 노동시장에서 분투하는 청년들의 국제화도 돕는다. 정부와 민간이 한국인 특유의 열정과 실행력으로 함께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개발협력은 우리 중견국 외교의 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