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안수영 기자] 지난 4월 초, 보드게임 전문기업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자사의 보드게임 '코코너츠'가 세계 최대 보드게임 커뮤니티 '보드게임 긱(www.boardgamegeek.com)'의 어린이 보드게임 부문 순위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보드게임 긱은 이용자들의 게임 평점을 순위 형태로 제공한다. 코코너츠는 어린이 게임 부문에서 꾸준히 상위 랭크 되었지만,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러한 기록은 국내 보드게임으로는 사상 최초인데, 전 세계 시장에서 국산 보드게임이 그 우수성을 증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 동안 보드게임 개발은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강세를 보였지만, 국내 보드게임도 점차 성과를 내고 있다. 국내 보드게임 개발 산업은 어떻게 성장했을까. 코코너츠를 퍼블리싱한 코리아보드게임즈의 김기찬 개발본부장, 코코너츠의 디자인을 담당한 김근배 대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왼쪽: 코리아보드게임즈 김근배 대리, 오른쪽: 김기찬 개발본부장>
세계를 흔든 원숭이의 코코넛, '코코너츠'
'코코너츠'는 원숭이 모양의 발사대를 이용해 코코넛을 튕겨 넣어 바구니를 차지하는 어린이 보드게임으로, 코리아보드게임즈가 직접 퍼블리싱한 게임이다.
"코코너츠는 원숭이 모양의 발사대를 이용해 코코넛을 쏴서 컵에 넣는 게임입니다. 컵 6개를 먼저 가져오면 이기는 게임인데요, 상대방의 컵을 빼앗을 수 있는 반전도 있습니다. 울퉁불퉁한 코코넛이 불규칙하게 튀어 예상치 못한 성공과 실패가 가능합니다. 2012년 여름에 독일 보드게임 작가 박람회에서 아이디어를 발굴해, 약 1년 여의 개발 기간을 거쳐 2013년 여름에 출시했습니다"
이렇게 출시된 코코너츠는 2015년 4월 전세계 어린이 보드게임 1위를 달성했다. 이러한 기록은 국내 보드게임 업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 순위를 제공하고 있는 보드게임 긱(boardgamegeek.com)이라는 사이트는 세계 최대의 보드게임 데이터베이스, 커뮤니티인데요. 전 세계 유저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각 장르별 게임 순위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코코너츠는 2014년 여름에 미국 출시를 시작으로 해외 판매가 시작되었는데요,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순위에 오르기 시작했고 마침내 1등이 되었습니다. 어린이 게임 부문은 독일의 유명 브랜드에서 워낙 게임이 많이 나오기도 하고, 매우 오랫동안 루핑루이가 1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요, 코코너츠가 짧은 시간 내에 좋은 반응을 얻어 기분이 좋습니다. 비록 한 장르에서 1등이지만 한국 게임회사로는 처음이기도 하고, 퍼블리셔로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은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봅니다"
<4월 7일 기준 보드게임 긱 어린이 보드게임 부문 순위. 현재는 루핑루이가 다시 1위를 차지했지만, 오랜 기간 루핑루이에 근소한 차이로 대적하는 어린이 보드게임이 없었다>
코코너츠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게임 규칙만 본다면 매우 단순한 게임이지만, 단순함 속에 숨겨진 재미가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끄는 요소가 됐다.
"우리나라의 투호, 서양의 비어퐁, 골프나 농구 등의 스포츠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는 뭔가를 던져 골인시키는 놀이에 재미를 느낍니다. 이 간단명료한 놀이에 특별한 론처(발사대)와 불규칙한 바운스의 코코넛, 서로 뺏고 뺏기는 인터렉션이 유저들에게 어필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코코너츠는 단순함 속에 세심하면서도 결정적인 차이를 더했다. 그 동안 무언가를 던져 골인하는 것을 목표로 한 보드게임들은 많았지만, 발사하는 물체를 직선으로 날리거나 힘을 세게 실으면 승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코코너츠는 코코넛이 포물선을 그리며 들어간다는 점에서 여느 게임과는 다른 긴장감을 더했다. 발사대 조작에 따른 게임 전략과 기술, 코코넛에 탄성을 더해 공이 튀는 재미를 더한 것도 특징이다.
그 밖에 코코너츠의 디자인도 성공 요소다. 코코너츠는 현재 해외 17개국에 수출되고 있는데, 수출용 게임들도 손오공 고유의 디자인을 유지했다.
"코코너츠의 디자인은 화려함을 추구하기보다는 테마와 패밀리 타깃에 맞추어 기획했습니다. 손오공의 후계자를 뽑는다는 스토리를 설정하고, 화궈산에서 열리는 이색 왕위쟁탈전을 묘사했는데요, 이것이 미국이나 유럽 퍼블리셔들에게 신선하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동양적인 테마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나라에서 동일한 패키지 디자인으로 출시돼, 오랜 시간 작업한 노력에 대한 보람과 디자이너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원숭이 론처의 반응도 좋아, 인터넷상에 사진이 많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코코너츠 디자인을 주도한 김근배 대리는 "약 1년 가량 열심히 코코너츠를 준비했는데, 조금씩 성과가 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여 뿌듯하기도 하고 어안이벙벙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례가 처음이라서 그렇지만, 앞으로도 다른 프로젝트를 통해 이와 같은 사례를 더욱 많이 만들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코코너츠는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돼 현재 미국, 핀란드, 프랑스, 독일 등 17개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그리스, 스페인을 비롯한 5개국에 판매를 앞두고 있다. 2014년 3월에는 Golden Geek Award 최종 경쟁 부문에 국내 게임 최초로 진출했으며, 9월에는 덴마크 올해의 게임상 최종 경쟁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국내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선정한 '2014년 3분기 기능성 게임 부문(교육/스포츠/의료/공공)' 이달의 우수게임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 보드게임 개발 시장, 싹을 틔우다
현재 보드게임 개발은 독일이나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보드게임 개발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왔을까. 코리아보드게임즈가 보드게임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약 2012년으로 몇 년 남짓이다.
"국내 보드게임 퍼블리싱이나 개발이 매년 늘어나고는 있는데, 아직은 시작 단계나 다름없는 것 같습니다. 시장이 작다 보니, 1년에 10개 이상의 신작 게임을 출시하는 보드게임 퍼블리셔는 매우 드뭅니다. 다만 보드게임에 대한 관심 증가, 크라우드 펀딩 등을 바탕으로 개인 작가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한국 작가의 게임이 프랑스, 미국 등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출판되는 사례도 많이 늘었는데요, 이에 따라 해외 기업들의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커졌습니다"
국내 보드게임 작가의 성공 사례로는 김건희 작가를 들 수 있다. 김건희 작가는 국내에서 가장 각광받는 보드게임 개발 전문가로 '피겨그랑프리', '고려', '조선', '세븐킹덤', '토끼와거북이', '아브라카...왓?' 등 다양한 보드게임을 선보였다. 2014년 독일 에센 박람회에서 '아브라카...왓?'으로 업계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14년과 2015년에는 각각 '고려'와 '토끼와거북이'로 프랑스 칸느 게임어워드에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올렸다.
<'아브라카...왓?'의 디자이너 김건희와 일러스트레이터 마리 까두아. 출처: garykimgames.com>
코리아보드게임즈 역시 국내 보드게임 개발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보드게임 공모전이다.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올해로 4회째 '2015 보드게임 공모전'을 개최하며 기성 작가 및 신인 작가의 숨은 작품을 발굴하고 있다.
"매년 코리아보드게임즈 보드게임 공모전을 개최해, 글로벌 시장에 퍼블리싱할 게임을 찾고 있습니다. 올해가 4년째인데요, 매년 한국과 해외에서 접수되는 응모작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한국 작가들과 정기적인 미팅을 통해 새로운 게임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재 3명의 한국 작가들과 3개의 신작을 준비 중입니다"
국내 보드게임 개발이 서서히 움트는 시점에서 코코너츠의 활약은 고무적인 사례다. 김 본부장은 "코코너츠를 시작으로 코리아보드게임즈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됐다"라고 말했다. 물론, 코코너츠 외에도 국내에서 만든 우수한 보드게임들이 더 있다.
"예를 들면 '아브라카…왓?'과 '파라오 코드'는 이미 10개국 이상에 수출하고 있는 성공작입니다. 또한, 많은 나라는 아니지만 일부 시장에 수출이 확정된 '잘그락 왕국', '그랜드슬램', '톡톡 우드맨' 등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파라오 코드는 독일 초등학교 수업에 활용하는 보드게임으로 공식 등록됐으며, 유럽의 라트비아에서는 초등학교 영재교육 교재로 채택됐다. 파라오 코드는 서로 다른 3개의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숫자로 사칙연산을 하고 숫자를 맞추는 게임으로, 수리력과 기억력을 요구한다. 규칙은 간단하지만 몰입도가 높고 게임성이 뛰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편, 현재 국내에서 인기 있거나 주로 개발되는 보드게임 중에는 캐주얼 게임이 많지만, 전략 게임도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작년에 출시한 '잘그락 왕국'이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전략 게임인데요, 참신한 메커니즘으로 작년 독일 에센 박람회에서 주목 받았습니다. 올해 에센에도 게이머를 대상으로 하는 가벼운 전략 게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코리아보드게임즈 외에도 황소망 작가의 '길드홀'과 같이 수준급의 전략 게임이 해외에서 호평을 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올해 준비하고 있는 게임들 중에도 기대작이 있다. 김 본부장은 오는 10월 열리는 에센 박람회에 선보일 작품이 3개, 에센 박람회 이전에 선보일 신작 게임이 2개 있다고 소개했다.
"에센 박람회 이전에 선보이는 2개의 게임 중 하나는 '이웃집 몬스터'라는 게임인데요, 아직 출시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영어판과 프랑스판 등을 계약한 상태입니다. 프랑스 보드게임 커뮤니티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에센 박람회에 선보이는 3개의 신작 보드게임은 독특한 재미와 일러스트가 특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말씀 드리기 어렵지만, 기대해 주세요"
국내 보드게임 개발의 미래, 앞으로가 더 기대
그 동안 한국에서 보드게임은 일부 사람들의 취미 문화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라는 점, 어린이들에게 교육적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보드게임에 대한 접근성이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다양한 보드게임을 구입하거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이 늘어났고요, 동호회도 많이 생겼어요. 전국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보드게임을 수업에 활용하는 사례는 이제 보편화됐고요, 일부 도서관에서도 보드게임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여성 유저의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 국내 보드게임 개발이 활성화된다면 긍정적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국내 보드게임 개발이 활성화되면 산업 성장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고, 보드게임 유저들에게도 선택의 폭이 늘어난다.
"아직 한국의 보드게임 시장은 해외 보드게임이 90% 가까이 점유하고 있는데요, 국내에서 우수한 콘텐츠가 많이 나올수록 우리나라보다 훨씬 큰 해외 시장에서 더욱 눈에 띄는 결과들이 나올 것입니다. 사용자들도 보다 풍부한 콘텐츠를 누릴 수 있을 것이고, 전 세계에서 성공하는 우리 게임에 대한 자부심도 높아지겠지요"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앞으로도 보드게임 개발 및 보드게임 문화 활성화에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선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직접 즐기는 기회를 열 방침이다. 보드게임 개발 역시 중요한 과제다.
"저희의 역할은 보다 재미있는 게임을 발굴하고 만들고,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매년 꾸준히 그 길을 걸어오고 있는데요, 올해에는 특히 체험행사를 더 많이 가질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보드게임 개발의 경우, 코코너츠 외에도 한국 퍼블리셔의 게임이 해외 시장에서 주목받는 사례가 더욱 늘어나도록 할 것입니다. 올해 새로 나올 게임들이 많습니다. 비단 코리아보드게임즈뿐만 아니라 다른 보드게임 회사에서 선보이는 게임들, 그리고 국내 작가들이 직접 개발하는 보드게임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 바랍니다"
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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