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행정기관 지휘-감독 맡고 있지만… 후보자 5명 청문회 준비로 2년 허송”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이임식을 하던 지난달 27일 오후 6시, 국무조정실의 A 국장은 오송역으로 가는 KTX 열차에서 스마트폰으로 이임식을 봐야 했다. 이날 온종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임식이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오늘은 사의 수용이 안 될 것 같다”라는 언질을 듣고 세종청사로 복귀하던 중이었다.
“그래도 생중계로 이임식을 봐서 다행이네요. 지난주 사의를 표명하던 때는 자정 넘어 자고 있느라 다음 날 아침에야 소식을 접했거든요.”
자신이 몸담은 조직의 수장이 언제 사의를 밝히고 몇 시에 이임식을 하는지조차 감을 잡을 수 없는 씁쓸한 상황. 총리를 보좌하는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국무총리실)이 처한 현실이다. 총리실 공무원들은 “이제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면서도 총리에 대한 세간의 손가락질에 못내 아쉽고 서운하다.
“2년 내내 청문회 준비만 했다”
‘중앙행정기관의 행정 지휘·감독, 정책 조정 및 사회위험·갈등 관리.’ 정부조직법이 규정한 총리실의 업무다. 법적으로는 정부 각 부처를 통할하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고 있지만, 현 정부 들어 총리실의 주 업무는 ‘인사청문회 준비’가 돼 버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5명의 후보자가 지명되고 이 중 3명이 낙마하는 불운을 겪으면서 총리실은 ‘청문회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2년을 보낸 것이다.
경제부처의 한 국장급 관료는 “부처 수장이 새로 지명되면 인사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한 달여간 부처의 모든 업무가 사실상 ‘올스톱’된다고 보면 된다. 그 혹독한 통과의례를 2년간 다섯 번이나 치렀다는 것은 2년 내내 청문회 준비만 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총리실의 한 1급 관료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다 보니 총리가 물러나도 내부 직원들은 담담해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 서기관급 직원은 “조만간 새 총리가 지명되면 ‘청문회 준비’라는 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지금이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
당장 총리가 물러난 지난달 27일 이후 총리실은 올해 광복절에 진행할 ‘광복 70주년 기념사업’ 준비 상황과 현 정부의 140개 국정과제 진행 상황을 체크하는 ‘국정과제 신호등’ 점검 작업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총리는 없지만 총리실은 꾸준히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차원에서 적극 홍보에 나선 것이다.
“총리실 힘 받을 절호의 기회였는데…”
총리실 관료들이 겉으로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까맣게 타 버린 속내까지 숨기기는 어렵다. 특히 이 전 총리 낙마는 아쉬움이 더하다. 모처럼 여당 원내대표 출신의 ‘실세 총리’가 온 만큼 총리실이 국정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성완종 리스트라는 돌발 변수에 발목이 잡혀 물거품이 됐다는 것이다.
이완구 전 총리는 ‘공직기강 확립’을 전면에 내세우며 스스로가 ‘실세 총리’임을 자임했다. “세종시 식당에 파리만 날린다”는 뒷말까지 들으면서 ‘오후 1시 점심시간’을 엄수하라고 요구했고, 관계장관회의에 차관을 대신 보낸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누구는 한가해서 이 자리에 있나”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공공기관 개혁, 복지 구조조정 등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던 업무를 직접 챙기며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향해 “부총리도 (총리 지휘를 받는) 장관”이라고까지 말했다.
총리실로서는 이완구 전 총리의 강한 드라이브로 일선 부처들에 잃은 인심까지 만회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결국 훌륭한 총리가 취임해 열심히 국정을 챙겨야 풀리는 문제”라며 “하루라도 빨리 새 총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