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던 사각의 링에는 허무함마저 감돌았다. 세기의 대결을 손꼽아 기다려온 복싱 팬들은 맥이 풀렸다. 2억5000만 달러의 천문학적인 대전료치고는 어이없는 졸전이었다. 국내 중계진도 “하이라이트로 편집할 만한 펀치가 없는 것 같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3일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호텔 아레나에서 열린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와 매니 파키아오(37·필리핀)의 WBC·WBA·WBO 웰터급 통합타이틀전. 메이웨더는 파키아오에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118-110, 116-112, 116-112)을 거뒀다. 메이웨더는 48전 전승(26KO) 행진을 이어가며 로키 마르시아노가 보유한 49전 전승 기록에 1승 차로 다가섰다. 파키아오는 57승(38KO) 2무 6패를 기록했다.
초반 KO를 노리고 적극적인 공세로 나올 것으로 예상했던 파키아오는 몸을 사렸다. 4라운드에서 왼손 스트레이트를 메이웨더의 안면에 꽂은 뒤 세차게 몰아붙였으나 순간 스스로 뒤로 물러났다. 이후 메이웨더의 빠른 발을 잡지 못해 왼손 펀치는 번번이 허공을 갈랐다. 10라운드 이후에도 모험을 걸지 못했다. 파키아오의 트레이너 프레디 로치는 경기 전 “메이웨더가 예상외로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다”며 맞불을 놓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메이웨더가 자신의 스타일대로 아웃복싱을 펼치면서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메이웨더는 무기력한 경기에도 1억5000만 달러(약 1611억 원)의 대전료를 챙겼다. 파키아오는 1억 달러(약 1074억 원)를 받았다. 메이웨더는 세계권투평의회(WBC)에서 100만 달러(약 10억7000만 원)를 들여 에메랄드와 순금으로 특별히 제작한 통합타이틀 챔피언 벨트까지 어깨에 걸었다. AP통신은 메이웨더가 435회의 펀치를 시도해 148개를 적중했다고 보도했다. 펀치 1회당 3억7000만 원가량을 받은 셈이다. 파키아오는 429차례의 주먹을 뻗어 81회를 적중하는 데 그친 것으로 분석됐다.
파키아오의 고국 필리핀은 이번 패배로 침통함에 빠졌다. 인구 1억700만여 명 대부분이 TV로 경기를 지켜볼 것으로 예상돼 전력 수급 걱정까지 했던 필리핀의 현지 언론들은 그 결과만을 간단히 전했다.
유재영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