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극인 도쿄 특파원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1년 전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집요한 요청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일본을 국빈 방문했다. ‘2박 3일’의 벼락치기 일정 속에 의회 연설을 생략했고 정상회담 후 오찬도 아베 총리와 함께하지 않았다. 미셸 여사마저 동행하지 않아 일본은 무척 서운해했다. 한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가 이혼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는 억지 주장을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미국의 압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과거사 반성을 얻어내려던 한국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오바마 쇼크’다. 얼마 전에는 ‘시진핑(習近平) 쇼크’가 한국의 뒤통수를 쳤다. 한국과 대일 과거사 공조를 하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2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회의에서 아베 총리에게 미소를 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지난해 11월 아베 총리의 인사말 통역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돌렸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것이다.
이처럼 바람은 언제든지 바뀌고 쇼크는 계속될 수 있다. 특히 내년 미 대선 이후 새로 들어설 차기 정권의 대중 정책이 견제보다 협력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면 한국과 일본의 외교 환경은 극적으로 뒤집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에 유리한 상황이 펼쳐진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외교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미국과 중국의 직거래 가능성이다. 이는 한일 모두에 제2의 닉슨 쇼크로 다가올 수 있다. 빅2가 자신들의 이익을 최우선시해 아시아의 운명을 결정하는 상황 속에서 주변국이 국익을 지키는 방법은 강력한 연대밖에 없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서로의 전략적 가치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다.
물론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는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 잇따른 쇼크는 지금 방식이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웅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무조건 한국 편을 들어줄 가능성도 희박한 데다 일본의 한일관계 전문가들은 아베 총리를 비판만 해서는 반발만 초래할 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일본이 뭘 해도 한국은 어차피 비판만 할 것이니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게 현재 일본의 분위기다.
이제 와서 한국이 손을 내밀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는 주장에는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의 지론이 참고가 될 것 같다. “피해자인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피해 다닐 이유가 없다.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위안부 문제나 역사인식이 이대로는 곤란하다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문제 해결의 부담은 아베 총리에게 넘어가게 된다.” 볼을 일본에 넘기라는 얘기다.
배극인 도쿄 특파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