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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이 한줄]지식습득보다 망각의 속도가 빠른… 직장인의 비애

입력 | 2015-05-04 03:00:00


《 내가 지적인 추락을 겪게 된 데는 직업 탓도 있다. 졸업 직후에 나는 ‘주간 엔터테인먼트’의 기자가 됐다. 영화, TV, 음악 분야를 시시콜콜 다루는 잡지이다. 나는 대중문화에 관한 시시껄렁한 지식을 두개골 가득 채웠다. ―한권으로읽는브리태니커(AJ제이콥스·김영사·2007년) 》

직업을 갖고 일을 시작하면 직업에 대한 숙련도는 높아진다. 일한 지 몇 년이 지나면 제법 능수능란하게 업무를 처리한다는 평가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뇌를 업무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들로 가득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 학생 때 쌓아두었던 지식들이 뇌 밖으로 밀려나간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뒤늦게 부지런히 책을 읽어 새로운 정보를 뇌에 구겨 넣지만 일에 시달리는 사이 지식은 또다시 휘발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보가 망각되는 속도에 맞춰 새 정보를 흡수하거나, 아직 뇌에 남은 정보들(학생 때 습득한)을 간신히 붙잡고 살아간다.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의 저자인 A J 제이콥스는 “한때는 나도 똑똑했다”고 말한다.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닐 때에는 여행 짐을 꾸릴 때마다 유명 작가의 책을 챙겼고 마르크스주의의 원리에 대한 토론도 즐겼다. 하지만 기자로서의 삶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뇌가 흐물흐물해졌다고 고백한다. 지금의 그가 대학 생활을 떠올릴 때 기억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숙사 바닥에 내버려둔 빵이 5일이 지나도 먹을 만했다는 사실 정도다.

그래서 그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완독하기로 결심했다. 32권, 3만3000페이지, 6만5000개의 항목을 읽기로 했다. 책을 쌓아 올리면 높이만 127cm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저자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 단어의 정보를 일상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기억한다. 백과사전에서 ‘양파’를 읽은 뒤 수돗물을 세게 틀어놓은 채 양파를 썰다가 아내에게 혼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직장인이 더 멍청해지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 책을 읽는 일 말이다. 지난달에 사두고 겨우 서문만 읽은 책을 꺼내 들어야겠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