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타임캡슐서 쏟아진 깜짝 유물들
1975년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목제 남근(위쪽)과 14면체 주사위.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하루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조사원들의 긴장감은 차츰 높아졌다. 연못 곳곳에서 처음 보는 유물이 쏟아졌는데 나무나 뼈로 만든 기물들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한 채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진흙을 걷어낼 때마다 속살을 드러내는 유기물과 완벽한 보존상태에 놀랐지만 안타까움도 공존했다. 외부 공기에 노출되는 순간 유기물의 색깔이 변하며 훼손됐기 때문이다.
발굴에 들어간 지 두 달을 넘긴 5월 29일 예상치 못한 유물을 만났다. 북쪽 구역에서 진흙을 제거하던 도중 17cm 길이의 나무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심스레 물로 씻던 조사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도 리얼한 형태의 남근이었기 때문이다. 궁궐 연못 속에서 이토록 사실적인 목제 남근이 출토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안압지에서 출토된 남근의 용도에 대해 실용품으로 보는 견해가 많지만, 요즘에도 바닷가 해신당(海神堂)에서 남근을 깎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여성을 상징하는 연못에 제사를 지내면서 넣은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도대체 안압지는 어떤 곳이었기에 이런 특이한 유물이 출토된 걸까. 안압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왕궁을 넓히는 과정에서 만든 궁 안의 인공 연못이다. 삼국사기에는 “서기 674년(문무왕 14년) 궁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었으며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마치 경복궁 경회루처럼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거나 아름다운 새나 화초를 감상하는 휴식공간이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노닐었을 이 연못은 통일신라와 영욕을 같이했다. 신라 멸망 후 연못 속의 인공 산이나 주변 건물은 모두 무너져 내려 웅장함은 사라지고 대신 부평초나 연꽃이 무성한 모습으로 변했다. 안압지는 당시 생긴 이름으로 원래 명칭은 월지(月池)였다. 이곳에서는 신라 사람들이 실수로 빠뜨렸거나 주술적 의미에서 일부러 빠뜨린 것까지 3만 점 이상의 다양한 유물이 원형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발굴됐다. 촉촉한 진흙이 천 년 이상의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잊혀진 신라 문화를 온전히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