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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장택동]해명의 무게

입력 | 2015-05-04 03:00:00


장택동 정치부 차장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 당사자는 사실이든, 아니든 일단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일반인이라면 인지상정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의혹의 당사자가 무게감 있는 정치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교한 해명이 필요하다. 정치인의 말에는 막중한 정치적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진 뒤 언론 보도의 흐름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메모 내용대로 실세 정치인들에게 금품을 줬는지 여부다. 다른 하나는 관련자들의 해명이 사실이냐다. 후자와 관련해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이 전 총리의 경우 성 회장과 친한 사이였는지, 2012년 4월 4일 성 회장과 충남 부여의 선거사무실에서 독대했는지에 대한 해명이 문제가 됐다. 이 전 총리는 “의원 1년을 같이 한 것 외에는 특별한 인연이 없다”, “(선거사무실에서) 단독으로 특정 의원을 만나고 그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가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전 총리와 성 회장은 충청권 출신이고 의정 생활도 같이 한 만큼 “개인적으로 친분이 깊다. 선거사무실에서 독대했는지 여부는 확인해 보겠다” 정도로 설명했다면 논란이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문재인 대표도 성 회장의 2007년 특별사면과 관련한 질문에 처음부터 “사면은 법무부의 업무”라고 해명하는 바람에 일을 키웠다. 헌법에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는 만큼 만에 하나 법무부가 사면을 전담했다고 한들 결정권자인 대통령이 책임을 피하긴 어렵다. ‘당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봐야 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안타까운 일이다’ 정도로 답했다면 어땠을까.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두고 해명 관련 논란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본말이 전도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어떤 게 정말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고 가를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데는 도청을 사주했다는 것보다 거짓말을 한 게 더 결정적인 이유였다.

이 전 총리나 문 대표 같은 노련한 정치인들이 왜 축소 지향적 해명으로 논란을 자초하는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를 두고 한 중진 의원은 “여론을 먹고 사는 정치인은 자기 보호 본능이 유독 강하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여론’이라는 게 단순하지가 않다.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발언을 여론은 순순히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 복잡하게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진실’이다. 임기응변이 아니라 진실이 바탕이 된 해명은 호소력을 갖게 되고 당사자에게 힘이 될 수 있다. 진실로 호소하더라도 용인받지 못할 만한 사안이라면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낫다.

장택동 정치부 차장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