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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풋사과

입력 | 2015-05-04 03:00:00


풋사과 ―고영민(1968∼ )

사과가 덜 익었다
덜 익은 것들은 웃음이 많다

얘들아, 너희들은 커서 잘 익고
듬직한 사과가 되렴
풋!

선생님이 말할 땐 웃지 말아요
풋!

누구니?

풋!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걸
어떡해요



‘풋내’는 ‘풋나물이나 푸성귀 등에서 나는 (싱그러운) 냄새’라는 뜻인데 ‘미숙하고 유치한 느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덜 익은 것, 미숙한 것’이란 뜻을 가진 접두사 ‘풋’은 ‘푸르고 싱싱하다’라는 뜻의 형용사 ‘풋풋하다’에서 파생됐을 것이다. 풋감, 풋고추, 풋내기, 풋바심, 풋솜씨, 풋술, 풋잠, 풋사랑! 한입 베어 물면 잇새에 상큼하게 배어드는 풋사과 맛이 나는, 떫은 듯 새콤달콤한 ‘풋’ 단어들이여!

사과는 좀 덜 익어도 날것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이다. 그 풋풋한 맛을 잘 익은 사과맛보다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맏물 사과에 앞서 당당히 시장에 나온다. 빨강, 노랑, 보랏빛 과일들 속에서 파릇한 풋사과는 무르익은 여인들 속의 소녀 같으리. 풋사과를 보면 ‘풋사과’라고 읊조리고 싶어진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살짝 벌어지면서 마음을 싱그럽게 간질이며 나오는 소리, ‘풋’. 시도 때도 없이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 소녀들의 웃음이란다.

‘얘들아, 너희들은 커서 잘 익고/듬직한 사과가 되렴’, 선생님 말씀에 소녀들이 ‘풋!’ 웃는다. 우스운 건 우스워서 웃기고 진지하면 진지해서 웃긴다. ‘선생님이 말할 땐 웃지 말아요’, 그 말에 소녀들은 또 ‘풋!’ 웃는다. ‘누구니?’, 언짢아진 선생님은 화난 눈으로 둘러봤을 테다. 소녀들도 웃음을 쥐락펴락하는 게 권력이라는 것, 웃을 자리 안 웃을 자리 가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선생님의 권위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도무지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것이다. ‘풋!/자꾸 웃음이 나오는 걸/어떡해요’, 좋은 나이일세. 나이 들수록 웃을 일이 적어진다. 웃음이 웃음을 불러 배를 쥐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어본 게 언제 적인지 모르겠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