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5월 4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약 3000명의 학생이 모였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의 전승국들이 파리 강화회의에서 전쟁 전에 독일이 갖고 있던 이권을 분배하면서 일본의 ‘21개조 요구’를 수용한 탓에 칭다오 등 산둥 반도의 주권을 중국이 되찾지 못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였다. 격분한 학생들은 ‘칭다오를 반환하라’는 요구를 하며 거리로 나섰고 상인, 노동자들이 적극 가세했다. 두 달간 22개 성, 200여 개 도시를 뒤흔든 시위는 사회주의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조선은 독립을 도모하면서 독립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겠다고 말했다.” 당시 베이징 학생들은 선언문에서 5·4운동을 두 달 전 한국의 3·1운동에 비유했다. 훗날 중국 공산당 창당을 주도한 천두슈 등이 만든 ‘매주평론’은 3·1운동 기사를 전하며 조선의 독립운동이 중국 인민을 뒤흔든 최대의 사건이라고 평했다. 한국에선 일제의 3·1운동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건너가 5·4운동에 합류한 이들도 있었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