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행복원정대/엄마에게 날개를]<8>황혼육아에 시달리는 친정엄마들
“할마….”
이제 겨우 단어 몇 개를 말하는 생후 20개월인 현이(가명)가 나를 부를 때 하는 말이다. 돌이 갓 지났을 때 이 녀석은 “엄마” 하며 내게 달려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엄마가 아니야. 할머니야”라고 가르쳤더니 이제는 나를 ‘할마’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상했다. 육아는 예전보다 쉽지 않았다. 내 나이 62세.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얼마 전 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에 갔다가 일주일간 앓아누웠다. 한 친구는 할머니를 향해 달려오는 혈기왕성한 손자를 보고 ‘덜컥’ 겁이 나 뒷걸음질 쳤다고 했다. 게다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게 하는 것이 전부였던 옛날의 육아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구식 할머니’가 되기 싫은 나는 손자 사진을 실시간 딸에게 보내주려 스마트폰 사용법부터 배웠다.
○ “애 봐준 공은 없다”
교사인 첫째 딸이 아들을 낳았을 때, 나는 최소한의 도움만 주겠노라고 선언했다. 수억 원을 준다 해도 육아는 싫다고 거절했다. 첫째 딸은 “친정엄마 맞느냐”며 한 달간 연락을 끊었다. 나는 단호했다. 혹시라도 마음이 약해질까 산후조리도 도우미에게 맡기라고 했다.
이유인즉슨 황혼육아에 가담했다가 ‘폭삭’ 늙은 친구를 여럿 봤기 때문이다. 이 친구들은 “애 봐준 공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친구는 출산을 앞둔 딸이 육아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필에 이렇게 쓰라고 조언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엄마. 그동안 엄마 주려고 모아둔 비자금이 있는데…. 현이 좀 키워줄 수 없을까.”
그때부터 매달 100만 원과 추가 수당을 받는 조건으로 황혼육아를 시작했다. 둘째 딸은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내가 사는 아파트의 옆 동으로 이사를 왔다. 매일 아침 딸과 사위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와 맡긴 뒤 퇴근길에 찾아간다. 딸이 야근일 때는 모자가 아예 우리 집에서 자는데 딸이 아들과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안방을 내줬다. 첫째 딸도 동생의 처지를 이해했기 때문에 엄마의 ‘변심’을 용인해줬다.
○ 딸 가진 죄
요즘 나의 일과는 이렇다.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7시쯤 현이 아침을 주고 나면 7시 반 둘째 딸과 사위를 위해, 8시엔 남편을 위해 아침을 차린다. 그 후 낮 12시 반 점심, 오후 6시 반 저녁…. 중간 중간 현이 간식까지 챙기려면 부엌을 벗어날 틈이 없다. 어린이집에 보내면 좀 나으려나. 하지만 내 한 몸 편하자고 말도 못하는 손자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었다. 결국 두 돌이 지날 때까지 오롯이 내 몫이 됐다.
물론 이 정도 고난은 충분히 예상했다. 하지만 남편의 잔소리는 뜻밖의 변수였다. 정년퇴직 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남편과 나는 요즘 육아 문제로 다시 부딪치기 시작했다. “우유 줄 때가 되지 않았나.” “아기 반찬이 좀 짠 게 아니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던 잔소리가 내 생활을 옥죄고 있다.
“낳은 건 너희들인데, 왜 키우는 사람은 친정엄마니. 나도 차라리 출근하고 싶다.”
■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처음에는 엄마랑 부딪쳐 아줌마를 써야지 생각도 했죠. 지금은 아니에요. 친정엄마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예요. 모든 걸 인내하고 내 아들 둘을 키워줄 사람은 엄마밖에 없어요.” (설모 씨·34·회사원)
“유치원에서 보내준 사진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딸과 함께 놀고 있는 우리 엄마,
언제 이렇게 늙었을까. 젊은 엄마 틈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손녀랑 열심히 노는 모습에 죄
책감마저 들었어요.” (김모 씨·39·교사)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