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호 전문기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핵 개발은 치밀하고 주도면밀하게 진행됐다. 군 연구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ADD) 부소장의 책임 아래 미사일과 핵탄두, 화학탄두 개발팀에 300여 명의 국내외 과학자와 기술진이 참여했다. 핵탄두의 경우 1975년 중반까지 탄두 구조와 고성능 폭약 제조, 컴퓨터 코드 등 3개 팀에서 30여 명의 해외 과학자가 활동했다.
CIA 보고서에는 박 대통령이 1976년 말 기술 부족으로 핵 개발을 포기했다고 돼 있지만 실상은 미국의 집요한 압박과 회유 때문이었다.
결국 한국은 핵을 단념했지만 그 전력(前歷)은 40여 년간 ‘에너지 주권’을 제약하는 올무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은 1992년 비핵화 선언을 통해 평화적 핵 이용 권리마저 스스로 포기했다. 평화적 핵 주권의 포기는 국가적 자해 행위라는 전문가들의 우려와 경고가 나왔지만 당시 노태우 정부는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이로써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은 금기의 영역이 됐다.
그 후과는 막대한 국부 손실로 이어졌다. 해마다 농축 우라늄 수입에 수천억 원을 쏟아부어야 했고,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핵폐기물은 국가적 골칫거리가 됐다.
최근 한미 원자력협정이 41년 만에 개정되면서 한국의 ‘원자력 족쇄’가 느슨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재처리와 농축 금지 조항(골드 스탠더드)’이 삭제돼 저농축 우라늄 개발과 사용 후 핵연료 재활용 연구의 물꼬를 텄다는 측면에서다. 원전 수출의 까다로운 인허가 조건이 완화돼 경제적 실리를 챙겼다는 긍정론도 있다.
반면 ‘절반의 성공’이라는 지적도 피해 갈 수 없다. 골드 스탠더드 조항은 빠졌지만 미국의 동의와 합의 없이는 여전히 재처리와 농축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국이 한국의 재처리와 농축 관련 연구 활동을 선선히 수용할 리가 없다는 냉정한 전망도 흘려듣기 힘들다.
새 협정이 한국의 다급한 현실과 한참 동떨어졌다는 지적도 곱씹어 볼 대목이다. 내년 고리 원전을 시작으로 몇 년 안에 핵폐기물이 포화 상태에 이르는데 한미 양국의 파이로 프로세싱(건식 재처리) 연구 개발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해외 위탁 재처리와 미국의 관련 기술 이전 약속도 코앞에 닥친 ‘핵폐기물 대란’을 막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새 협정이 선진적이고 호혜적이라는 정부의 자평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1980년대 초 시작된 한국의 원자력 개발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었다. 열악한 여건과 패배 의식을 딛고 많은 연구원이 핵연료 국산화를 비롯해 ‘에너지 주권’의 기틀을 닦는 데 피와 땀을 쏟았다. 냉난방도 안 되는 연구실에서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며 야근도 다반사로 했다. 과로로 위암을 얻어 작고하거나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 연구진도 있었다.
이들의 헌신과 노고는 오늘날 한국이 원전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그들의 노력으로 이뤄 낸 결실이 ‘절반의 성공’에 그쳐서야 되겠는가. 정부는 미국과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설득해 ‘원자력 국익’을 최대한 확보하고, 원천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농축 우라늄을 원자로에서 태운 뒤 거기서 나온 핵폐기물을 재처리해 핵연료(플루토늄)로 다시 사용하는 평화적 핵 주기의 완성은 미래와 후손을 위한 국가적 과업이다.
윤상호 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