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잘 아는 동생 A가 미국에서 귀국한 건 3년 전이다. 아이비리그의 코넬대 생명공학과를 졸업한 직후였다. 그는 곧 폐지 예정인 국내 의학전문대학원의 마지막 입학생이 되겠다고 했다. 막대한 유학비를 들여 미국 명문대를 나온 친구가 한국에서 의사가 되겠다니…. 우리나라에서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힘이 느껴졌다.
고교 동창 B는 국내 유명 사립대의 공학도였다. 하지만 2학년 여름방학 때 돌연 학교를 그만두었다. 학창 시절부터 꿈꿨던 한의대 진학에 재도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2년 동안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끝에 지방의 한 한의대에 입성했다. “명문대 졸업장보다 한의사 자격증이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한다”는 친구의 말이 아직 생생하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뉴스들을 지켜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가 적지 않다.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가 ‘도덕적인 인간이 모였다고 반드시 그 사회가 도덕적이진 않다’라고 지적했듯. 1% 인재들의 집합체라고 보기에는 믿기 힘든 장면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의사의 러시아 진출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부 의사들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국내 한의대 졸업자에게 러시아 로스토프대 의대 졸업자와 동등한 자격을 주는 협약을 러시아 당국과 체결했다. 보건복지부의 한의학 해외 거점 구축 사업의 성과였다.
하지만 한 의사단체 대표는 러시아 교육부와 로스토프대에 항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대한의사협회는 ‘국내에서 입지가 좁아진 한의사들이 해외 인증 과정의 맹점을 이용해 의사 행세를 하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러시아 같은 대국이 주권이 달린 의사 면허를 손쉽게 내줬을 리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아무리 상대가 못마땅해도 해외에서 거둔 성과까지 폄훼하는 건 상식 이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허용을 둘러싼 의협과 한의협의 반목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의협은 의사를 의료기기 문제의 주요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다. 의협은 복지부가 주재하고 법률가 소비자단체 등으로 구성되는 자문위원회 합류를 거부하고, 의사-한의사-복지부 3자 대면을 요구하고 있다. 양측 모두 ‘국민 건강과 안전’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이익 다툼 이상의 생산적인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대화 창구의 형태와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협상에 적극 임해야 한다는 질책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