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일찍 오셨네요!”
꽃이 피지 않아 실망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여인이 우리 부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팝나무가 보이는 베란다에서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며 집주인 부부와 인사를 나눴다. 경기 성남시에서 살다가 작년에 전북 고창으로 귀촌했다는 부부는 이팝나무가 내 집 정원수처럼 바라다 보이는 게 좋아서 이곳에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동네 어르신들이 이 동네에서 가장 젊으니까 나무를 관리하라고 하셔서 어제 풀을 죄 뽑아줬어요.”
어쩐지, 나무 아래 넓은 터가 잡초 하나 없이 깨끗해서 막 세수한 얼굴처럼 개운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부부가 나무지킴이가 된 덕분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팝나무가 이 부부를 부른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은퇴를 앞두고 귀촌할 곳을 찾아다니던 부부의 발길이 고향도 아닌 이곳에서 멈출 수 있었을까. 수십 년 살던 성남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 정착하여 이팝나무의 지킴이가 되다니 나무의 기운이 보통이 아니다 싶다. 게다가 그냥 스쳐갈 뻔했던 우리 부부까지 불러 인연을 맺게 해주다니!
“밤에 하얗게 꽃 핀 나무를 바라보면 뭉게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이팝나무 꽃이 풍성하게 피면 풍년이 온다고 믿었다는데 이팝나무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풍성한 사연을 만들어주는 나무인가보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