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건강 리디자인/당신의 건강가계도를 아십니까] 심근경색 가족력환자 건강 컨설팅
서울 은평구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김경래(가명·54) 씨는 3월 초 집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팔굽혀펴기를 5개쯤 하는데 갑자기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화장실까지 기어간 김 씨는 저녁으로 먹은 음식물을 다 토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김 씨의 병명은 ‘급성심근경색증’. 김 씨의 아버지도 50대 때 심근경색에 걸린 적이 있다. 누나는 집에서 잠을 자다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40대에 생을 마감했다.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남동생 역시 심장에 문제가 있었다. 가족력이 있는데도 김 씨는 그동안 건강에 무심했다.
3월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은 김경래(가명·54·오른쪽) 씨가 사무실에서 밥상 영양 컨설팅을 받고 있다. 주치의 이종영 강북삼성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참깨는 지방이 많으므로 피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이 교수는 4월 초 김 씨가 일하는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찾았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7시가 넘어 퇴근하는 김 씨에겐 이곳이 생활터전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김 씨의 아내에게 “평소에 먹듯이 식탁을 차려 보라”고 주문했다. 밥상엔 미역국, 잡곡밥, 나물 두 종류, 김치, 고추장, 갖가지 채소가 올라왔다. 이 교수는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만점을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첫 번째 지적 대상은 ‘깨 뿌린 나물’이었다. 참깨는 몸에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름기를 주의해야 하는 심혈관질환자는 피하는 게 좋다. 체중 조절이 필요한 김 씨는 칼로리도 신경 써야 하는데, 마무리 장식용으로 쓰는 참깨는 음식의 칼로리를 높이는 주범이 된다. 기껏 건강식을 만들어놓고 깨를 뿌리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채소가 네 가지 이상 담긴 바구니는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고추장’에서 점수가 깎였다. 김 씨 아내는 “남편이 채소를 싫어해 장을 찍어서 먹게 한다”고 말했다. 장류는 염분 함량이 높아 고혈압 등 또 다른 혈압 문제를 일으키기 십상이다. 이 교수는 “채소만 먹는 게 심심하다면 집에서 직접 만든 양념장을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한국인은 간이 맞더라도 장에 찍어 먹는 게 습관이 돼 있다. 당장 ‘장류’를 없애기 어렵다면 식감이 비슷한 양념장을 활용하면 된다. 이 교수는 두부와 쇠고기 등을 으깨 넣은 뒤 고추장을 약간 섞은 ‘저염식 쌈장’을 추천했다.
공인중개사인 직업 특성상 집을 보러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원래 차로 고객을 데리고 매물이 있는 곳까지 이동했지만 이 교수는 “걸어서 움직이라”고 말했다. 공인중개사사무소는 대체로 인근 지역 매물을 거래한다. 걸어서 가면 15분 안팎에 닿을 수 있는 곳들이다.
이 교수는 점심시간 직후 5분 거리에 있는 공원에서 몸을 풀 것을 권했다. 이 공원에는 운동기구 세 가지가 놓여 있다. 이 교수는 근육의 크기를 키우는 무거운 운동보다 어깨와 등을 늘려주는 스트레칭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을 지도했다. 운동을 하다 보면 숨이 차서 호흡이 불규칙하게 변한다. 숨을 참은 채 동작을 하면 근육이 경직돼 다칠 위험이 더 커진다. 이 때문에 이 교수는 계속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수면 습관도 바꿀 것을 권했다. 김 씨는 퇴근 후 친구들과 당구장에서 게임을 즐긴 뒤 귀가했다. 항상 오전 1∼2시에야 잠을 잤다. 담배 연기가 가득한 당구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뒤 늦게 잠드는 습관은 김 씨의 건강을 망치는 주범이었다.
김 씨는 이 교수의 조언대로 오후 7시가 되면 아내와 은평구를 가로질러 흐르는 개천을 따라 산책하며 집으로 곧장 들어간다. 집에 와서는 과일 등으로 저녁을 간단히 해결한 뒤 아무리 늦어도 오후 10시가 되면 잠자리에 든다.
의료진은 김 씨의 운동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운동부하검사를 했다. 헬스장 트레드밀(러닝머신) 같은 운동기구에 올라서서 기기를 부착하고 총 4단계에 걸쳐 속도, 경사 등을 조절하며 운동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원래 4단계까지 조절하며 측정해야 하지만 김 씨는 2단계에서 멈췄다. 약간 빠르게 걸었을 뿐인데 숨이 차올라 신음 소리만 들릴 정도였다. 10분이 안 돼 운동기구에서 내려온 김 씨는 숨을 고르느라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이 교수는 “운동능력이 동년배 남성의 50∼60% 수준”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그동안 팔굽혀펴기와 등산으로 체력을 단련해왔다. 측정 결과 김 씨에게 이런 운동은 독약에 가까웠다. 관상동맥 협착이 심한 사람에게 ‘팔굽혀펴기’는 심장에 무리를 줄 수 있어 금기시된다. 심혈관질환자는 갑자기 위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등산도 자제해야 한다. 이 교수는 주 3회 50분씩 걷기 운동부터 시작하라고 처방했다. 속도는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빨리 걷는 걸음 정도”라고 말했다.
김 씨는 “컨설팅을 받지 않았다면 팔굽혀펴기를 하며 몸을 더 상하게 했을 것”이라며 “간편한 생활 속 수칙들을 처방받아 한 달째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6월에 다시 병원을 방문해 영양과 운동능력 등 달라진 상태를 확인할 예정이다.
▼ [주치의 한마디]“금연,콜레스테롤 조절식,유산소 운동이 보약” ▼
김경래(가명) 씨가 병원을 처음 찾은 것은 3월 초입니다. 김 씨는 집에 혼자 있는 상태에서 극심한 가슴 통증을 느끼며 쓰러졌다가 겨우 가족에게 연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관상동맥조영술상 관상동맥 3개 혈관 모두 매우 심각한 협착이 동반된 상태였습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좌주간부 동맥의 협착이 심각했습니다. 김 씨는 ‘급성심근경색증 및 심인성 쇼크 상태’라는 진단을 받게 됐고, 즉시 응급 스텐트 삽입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혈관의 협착 증세가 많이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심근경색의 위험인자는 흡연, 운동 부족, 고혈압, 가족력 등이 있습니다. 특히 가족력이 중요합니다. 전체 심근경색증 환자의 15%는 가족력에 의해 병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같은 질환을 가진 가족의 수가 많아질수록 발병위험도 그만큼 올라갑니다. 직계가족 중 심근경색증이 1명 있으면 발병위험이 약 2배, 2명일 경우 3배 등으로 증가합니다.
컨설팅을 진행해본 결과, 김 씨의 생활습관엔 심근경색 발병위험을 높이는 요인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운동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김 씨는 매일 퇴근 후 팔굽혀펴기를 하는 것으로 운동관리를 했지만 이는 심근경색 환자에겐 독약입니다. 담배도 하루 한두 갑 정도로 많이 피우는 편이었습니다.
제가 제안한 것은 △금연 △콜레스테롤 조절식 △유산소 운동입니다. 부인이 식사를 준비하기 때문에 영양지도는 부인에게 했습니다. 김 씨는 직업 특성상 이동거리가 많았습니다. 이를 잘 활용하면 따로 운동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매물이 있는 현장에 찾아갈 때는 차 타고 가는 것 대신 걸어갈 것”을 주문했습니다.
현재까지 김 씨는 금연을 포함한 생활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있는 편입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이종영 강북삼성병원 순환기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