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따구리-동고비의 자식 사랑… 서남대 김성호 교수 8년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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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딱따구리가 새끼를 키울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나무를 쪼고 있다. 완성된 둥지 입구는 큰 참외만 하다. 아래 사진은 청딱따구리가 배 속 먹이를 토해 새끼에게 먹이는 모습.
“동고비 부부가 딱따구리 둥지를 살펴보고 갔네요. 딱따구리 둥지를 제 집으로 삼아 볼까 보러 온 것 같은데요.”
6일 전북 남원에 위치한 서남대 뒷산. 이 대학의 김성호 교수는 동고비가 들여다보고 간 소나무를 가리키며 “동그란 구멍이 청딱따구리 둥지 입구”라고 말했다.
○ ‘로열층’에 둥지 짓고 먹이 토해내 새끼 먹여
딱따구리 부부는 새끼를 위해 3월 말부터 둥지를 짓는다. 딱따구리는 재질이 무른 은사시나무와 오동나무를 선호한다. 나무를 정한 뒤에는 높이도 꼼꼼히 따진다. 이른바 ‘로열층’을 찾는 것이다. 둥지를 너무 낮은 곳에 지으면 천적에게 해를 입기 쉽고, 너무 높은 곳에 지으면 나무 기둥이 좁아져 넉넉한 공간이 안 나온다. 이 때문에 딱따구리는 보통 바닥에서 8∼10m 높이에 둥지를 짓는다.
딱따구리 둥지 입구는 한 마리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높이 30cm, 너비 20cm 정도로 널찍하다. 둥지를 완성한 뒤에는 알이 깨지지 않도록 톱밥을 깐다.
새끼가 나오면 딱따구리 부부는 본격적으로 ‘맞벌이’를 시작한다. 암수가 교대로 먹이를 구해 온다. 오색딱따구리나 큰오색딱따구리처럼 몸집이 작은 딱따구리는 암수 합쳐서 하루 평균 60번 정도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나른다. 몸집이 큰 청딱따구리나 까막딱따구리는 먹이를 삼킨 채 8번 정도 둥지를 드나들며 다시 토해내 먹인다. 김 교수는 “딱따구리가 토할 때 보면 정말 안쓰럽다”면서 “더이상 나올 게 없는데 모든 것을 쏟아내듯 짜낸다”고 말했다.
안락한 딱따구리 둥지를 운 좋게 차지한 동고비가 입구를 막기 위해 부리로 진흙을 날라 메우고 있다. 딱따구리보다 몸집이 작은 동고비는 자신이 드나들 정도의 구멍만 남기고 전부 진흙으로 막았다(아래 사진). 김성호 교수 제공
이를 위해 동고비는 진흙을 콩알만큼 물고 120번은 왔다 갔다 한다. 넓은 평수를 줄이는 것도 일이다. 나무 조각을 하나씩 물어와 축대를 쌓아 공간을 3분의 1 정도로 좁힌다. 축대 위를 나무판으로 덮어야 비로소 리모델링이 끝난다. 둥지 리모델링은 모두 암컷이 맡는다.
김 교수는 “동고비가 12시간 동안 애써 메운 둥지를 딱따구리가 5초 만에 망쳐놓기도 한다”면서 “동고비는 굴하지 않고 다시 메우는데, 이런 ‘무한도전 정신’이 동고비의 생존 방식”이라고 말했다.
3∼5마리의 새끼를 기르는 딱따구리와 달리 동고비는 10마리 내외를 기른다. 이 많은 자식을 거둬 먹이는 일은 아빠 동고비의 몫이다. 수컷은 하루에 100번 정도 둥지에 드나들며 먹이를 나른다. 새끼가 자라 수컷 혼자 벌기 벅차면 암컷도 따라 나선다. 먹이를 나르는 동안 동고비 부부는 먹이를 거의 먹지 못하기 때문에 점차 말라간다. 김 교수는 “비 오는 날에도 흠뻑 젖은 채 먹이를 물어 나르는 아빠 동고비를 본 적이 있다”면서 “둥지에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먹이를 건네는데, 흠뻑 젖은 몸이 새끼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아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남원=신선미 동아사이언스 기자 vami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