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산업부장
“세상에 공짜보다 비싼 것은 없는 법이야.”
공짜가 세상에서 가장 비싸다는 역설적인 이치는 신문 사회면을 조금만 들춰봐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농촌지역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침구나 건강용품을 실제 가격보다 수십 배 비싼 값에 떠안기는 사기 상술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들이 하나같이 내거는 미끼가 바로 공짜다. 무료공연이나 공짜선물로 유인한 뒤 인정(人情)에 호소해서 안 살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이들의 수법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의 요즘 행태를 보면, 수령자로서뿐만 아니라 공여자로서도 공짜의 달콤함에 푹 절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정책에 공짜라는 달콤한 포장을 씌워 국민들을 현혹하는 ‘정치상술(商術)’에 있어서는 세계 어느 정치인들이 우리 정치인들을 당해낼 수 있을까 싶다. 무상급식과 무상의료 등 무상복지 시리즈는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려 한 여야의 짬짜미도 공짜 선호 심리를 파고드는 전형적인 정치상술이다. 소득대체율 상승으로 이득을 보는 유권자들이 자신들에게 표를 줄 것이라는 계산에 취해, 나라 곳간이나 미래세대의 부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 우리 정치인들의 지금 모습이다.
소득대체율을 올리지 않고 현 수준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연금의 파산은 예정돼 있는 상태다. 2014년 말 현재 470조 원 규모인 국민연금기금은 2043년에 2561조 원으로 정점에 이르렀다가 2060년에는 완전히 바닥나게 된다. 이후에도 연금을 계속 지급하려면 가입자들에게 보험료를 더 내게 하거나 혈세를 투입해야 하지만 급속히 고령화하는 인구구조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부채 때문에, 때를 놓치면 어느 하나도 쉽지 않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지금은 15∼64세의 청장년 100명이 노인 16명을 부양해야 하지만, 2060년에는 청장년 100명이 노인 80명을 부양해야 한다. 현재 3%대 후반인 잠재성장률은 고정적인 0%대에 진입하고, 지금 500조 원대인 국가채무는 무려 1경4612조 원으로 ‘조’를 넘어 ‘경’의 시대에 들어서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과잉복지 때문에 2033년경 한국 정부가 파산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실정임을 감안하면 지금은 연금에 더 퍼줄 궁리를 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연금재정을 건전화하고 나라 곳간을 채우는 데 모든 지혜를 짜내도 부족할 때다.
현 세대가 공짜를 앞세운 정치상술에 계속 놀아날 경우, 후손들은 빈껍데기 연금과 파탄 난 재정, 제로성장이 체질화된 허약한 경제를 유산으로 받게 된다. “공짜에 취해 나라를 거덜 내먹은 세대”라는 역사적 평가를 면하려면, 얄팍한 정치상술에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표와 여론으로 정치인들에게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