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사람들은 어째서 아직까지 오지 않는 거야?’
5월 2일 오전 9시30분에 대관령휴게소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한 후배 2명이 1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거의 다 왔다”고 한 게 벌써 20분전인데, 아직까지 차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등산은 준비과정에서 뭔가 삐걱거리더니 시작부터 조짐이 이상하다.
지난 덕유산 산행의 여파가 생각보다 컸나보다. 함께했던 일행 9명 가운데 1명은 무릎 연골을 수술하고(오래전부터 예정됐던 거였지만), 또 한 명은 발목 인대를 다쳐 아직까지 병원을 오가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덕분에 이번 산행은 단출하게 여섯 명만 참가했다. 지난 10여회의 산행 중 최저 인원이다. 그럼에도 2명이 늦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다행히 이번 산행은 야트막한 선자령이다.
해발 1157m의 선자령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선산면의 경계, 백두대간의 주능선에 위치했다. 선자령(仙子嶺)이란 명칭은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와 목욕을 하고 놀다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데서 유래했다.
이제 일행이 모두 모였으니 출발이다. 오늘의 코스는 대관령휴게소를 출발해 양떼목장-풍해조림지-샘터-선자령-전망대-국사성황당을 거쳐 다시 대관령휴게소로 돌아오는 약 11.6km. 예상 등반시간은 점심시간 포함 4시간이다.
선자령은 높은 산이지만 해발 840m의 대관령휴게소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리 높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등산로가 평탄하고 오르기 쉬워 사계절 가벼운 트래킹코스로 즐겨 찾는다. 특히 겨울철 눈꽃 트래킹이 유명한데 눈이 많이 오는데다가 능선이 완만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온은 섭씨 20도를 오르내리고 간간히 구름이 보이지만 햇빛을 가릴 정도는 아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등산하기에 정말 좋은 날씨다. 오늘의 복장은 얇은 여름 등산바지에 메시 소재 반팔티셔츠, 그 위에 방풍 재킷을 입었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대비한 방풍 재킷도 봄철 산행에 필수다. 재킷은 쉽게 꺼내 입을 수 있도록 배낭 위쪽에 넣는 것이 좋다. 등반도중 휴식이나 식사 때 체온이 내려가지 않도록 입어줘야 한다. ‘서머 솔리튜드 재킷’은 옆구리 부분에 통풍 기능을 하는 3중 절개 슬릿을 갖춰 쾌적하고, 산행 중 바람과 가벼운 비로부터 체온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좋은 점은 제품을 둘둘 말아 재킷 가슴 주머니에 집어넣을 수 있어 언제 어디서나 휴대가 간편하다는 것이다. 이런 재킷은 봄여름 일상에서의 가벼운 운동이나 기온이 내려가는 야간에도 좋다. 옷들은 모두 컬럼비아 제품으로 트래킹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다.
웃고 떠들며 잠깐 걸은듯한데 어느덧 눈앞에 선자령이 들어왔다. 나무그늘 아래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펼친 시간은 오후 1시10분. 정상 바로 아래 풍력발전기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드넓은 목초지 끝으로 곤신봉과 매봉이 이어진다. 부드러운 초록색 구릉과 흰색의 커다란 풍력발전기, 푸른 하늘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냈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선자령 정상에 올랐다. 정상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민망한 200평 남짓의 널찍한 공터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날씨가 좋으면 이곳에서 동해가 훤히 보인다.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 바로 하산 길에 올랐다. 정상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넓은 초원이 나온다. 겨울철이면 등산객들이 눈썰매를 타는 곳이다. 눈이 없어서 아쉽지만, 대신 키 작은 들꽃이 등산객을 반긴다. 쉬엄쉬엄 꽃 사진도 찍고 그늘에서 쉬어가며 유유자적 산을 내려왔다. 중간에 국사성황당에서 굿도 구경하고 천천히 내려왔어도 대관령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15분. 이날 총 산행 시간은 4시간5분이다.
이제는 맛집을 찾아가는 시간. 오늘의 목적지는 평창군 대관령면에 있는 납작식당이다. 40년 전통의 오삼불고기 전문점인데, 푸짐한 양과 신선한 재료, 매콤한 맛을 자랑하는 근방에서 유명한 음식점이다. 대관령휴게소에서 차로 15분 남짓 걸려 찾아갔는데, 아뿔싸! 재료가 모두 떨어져서 오늘 장사를 끝냈단다. 아쉽지만 입맛을 다시며 뒤돌아서 근처 한우전문점을 찾았으나, 여기도 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시작부터 조짐이 좋지 않더니 마무리도 이상하다. 결국 근처 이름 없는 식당에서 오삼불고기를 서둘러 먹고 상경길에 올랐다. “다음은 곰배령 꽃구경 어때요?” 차에 타는데 일행 중 한명이 긴급제안을 한다. 아니 왜 갑자기 령(嶺) 타령, 꽃 타령을 하는 것일까. 그들의 마음에도 봄바람이 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