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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눈]시장경제 질서 회복서 해법을

입력 | 2015-05-11 03:00:00


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한국 경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시점에 와 있다. 다만 그 시점이란 금융이나 외환의 위기가 임박했다는 것이 아니라 성장 전략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이 문제점을 직시하지 않으면 장기 침체에 빠질 위험이 크고 회복이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전략에 기초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위해 세제, 이자율, 특혜 등의 방법으로 국가 차원의 지원이 있었다. 그 대가로 수출의 혜택을 함께 누렸는데 그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수출을 위한 생산과정에 노동과 자본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익배분의 경로이고, 둘째는 수출주도 성장이 가져다주는 자산가치 상승이라는 부(富)의 효과(예를 들어 주택 및 주식 가격 상승)를 통한 경로였다. 즉 경제 구성원의 일부가 다른 일부의 활동을 보조해 주고 그 대가를 나눠 갖는 형태였다.

1990년대의 정책 변화와 점진적 개방으로 이런 혜택들이 없어지자 일부 기업은 도산했다. 하지만 세계화의 물결에 힘입어 글로벌 가치사슬에 참여한 대기업들은 글로벌 소싱을 통해 경쟁력을 키웠고 해외의 저렴한 임금을 지렛대 삼아 국내시장 지배력도 강화했다. 즉 요소시장이나 공급 하청업자들에게는 수요독점(모놉소니·monopsony), 상품시장에서는 공급독점(모노폴리·monopoly)에 의해 1990년대 이전의 정책 환경에서와 흡사한 이득을 계속 누리게 됐다. 그 결과 근로자 임금은 더디게 증가했고, 상품 시장에서 밀려나는 중소기업이 증가해 과다한 자영업자를 양산했다.

이런 과정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통해 가속화됐다.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을 키운 대기업들의 노력으로 외환위기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에 발맞춰 함께 변하지 못한 한국 경제는 국제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더구나 각종 규제와 경쟁력 부족으로 외국 기업들은 한국을 생산기지로 많이 활용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글로벌 생산을 확대하는 것과 대조되는 현상이다.

이런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는 최근까지 잘 나타나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정체된 가계소득 대신 가계부채로 소비를 지탱해 왔다. 그 이후에는 빠른 세계화로 수출증가가 지속돼 이에 따른 부의 효과가 어느 정도 계속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과 주요 신흥국의 성장둔화로 수출마저 꺾이면서 한국 경제의 오래된 구조적 문제가 수면에 떠오르게 됐다. 이미 실질 내수성장률은 지난 10년간 거의 0%에 머물러 있다.

현 상황의 해답은 시장경제의 질서를 회복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시장경제 활성화는 반독점 규제를 강화해 공정한 거래질서를 회복하는 것을 뜻한다. 또 규제 완화를 통해 서비스를 포함한 시장경제의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일자리가 창출되고 임금인상이 가능해질 수 있으며 중소기업의 시장 접근이 더 수월해진다. 아울러 중소기업 정책은 단순한 재정 지원의 차원이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는 영역에 집중돼야 한다. 이런 근본적 구조개혁의 노력 없이 임금인상만 감행하면 더 많은 일자리를 해외에 뺏기게 된다. 또 기업들에 국내투자만 요구하면 글로벌 아웃소싱을 더 장려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질서 있는 시장경제 회복의 기반 위에 교육 및 기타 정책이 올곧게 서야 한다.

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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