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총선 보수당 압승] 유권자, 보수당 경제실적 손 들어줘… 659석중 331석 휩쓸어 단독 과반 잉글랜드 단결 vs 스코틀랜드 독립… 두 개의 민족주의에 노동당은 완패
“영국을 더욱 강하게 만들겠다.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리는 데 매진하겠다.”
영국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압승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8일 총리관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단독 정부 구성에 나섰다. 캐머런 총리는 이날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과 테레사 메이 내무장관, 필립 해먼드 외교장관, 마이클 팰런 국방장관 등 장관 4명의 유임을 발표했다. 이어 다음 날에는 지난해 교사 노조와의 갈등으로 교육장관에서 물러난 마이클 고브 의원을 신임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또 닉 모건 교육장관을 유임시켰다. 캐머런 총리가 주요 장관을 대거 유임시킨 것은 국정 연속성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가 이끄는 보수당은 7일 총선거에서 당초 전체 659석 가운데 270석 정도를 확보할 것으로 관측됐으나 무려 331석을 얻어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영국 언론들과 외신들은 보수당 압승 배경에 대해 ‘경제와 민족주의’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010년 보수당이 노동당을 제치고 집권한 뒤 영국 경제는 뚜렷하게 개선됐다.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은 0.6%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0.3%를 두 배로 앞질렀다.
재정 적자 규모도 지속적으로 줄었다. 노동당이 집권하던 200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1.3%에 이르렀던 재정 적자가 지난해 말에는 5.3%까지 떨어졌다. 보수당은 3년만 더 집권하면 현재 860억 파운드(약 145조 원)인 재정 적자를 2019년까지 70억 파운드 흑자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보수당은 비록 인기는 얻지 못하더라도 당초 내세웠던 공약을 끈기 있게 추진하겠다는 전략을 폈다. 선진국 최저 수준인 법인세율(23%)을 21%로 낮췄고, 올해는 20%까지 더 인하하기로 했다. 캐머런 총리는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해 1000여 개의 규제를 없앴다. 이번에도 기업의 각종 비용 부담을 해마다 8억5000만 파운드씩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반면 보수당에 맞선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당수는 정통 좌파적 공약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노동당은 “보수당이 국민건강보험(NHS)을 위협하고 있으며, 생활물가 상승으로 서민들의 생활이 어렵게 됐다”며 국내 연료 가격 상한제, 더 높은 은행 과징금, 200만 파운드(약 34억 원)가 넘는 고급 주택에 ‘맨션세’ 부과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그러나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결국 경제면에서는 보수당의 메시지가 더 강했다”며 “이번 승리의 핵심에는 보수당이 경제에 강하다는 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총선 기간 내내 국내적으로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에 대한 염원이 다시 불붙었고, 밖으로는 유럽연합(EU)을 떠나려는 민족주의 여론이 지대했다. 2000년대 노동당 정부 시절 여러 장관직을 역임한 노동당 피터 맨덜슨 의원은 이번에 노동당이 진 이유에 대해 “스코틀랜드독립당(SNP)과 보수당이 내건 민족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선 노동당의 전통적인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에서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SNP가 59석 중 56석을 싹쓸이하면서 독립에 대한 재투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캐머런 총리도 선거운동 기간 내내 “노동당이 SNP와 연정을 구성해 집권하면 영국의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며 잉글랜드인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했다.
캐머런 총리는 총선 승리 후 기자회견에서 “‘하나의 영국’이라는 원칙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면서 국민 단합을 호소하고 스코틀랜드에 대한 자치권 확대를 약속했다. 이에 따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8일 소득세율, 부가가치세율 등을 정할 권한이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에 이양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영국의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보수당의 공약으로 영국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9일 런던 다우닝 가의 총리관저 앞에서는 보수당의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