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古稀) 기업‘에게 배운다]<4·끝>JW중외제약
이런 수액제를 우리나라가 광복된 해인 1945년부터 꾸준하게 만들어 보급해 온 제약회사가 있다. 바로 JW중외제약이다.
JW중외제약은 1945년 8월 8일 ‘조선중외제약소’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고(故) 이기석 사장은 창업과 함께 ‘생명존중’이라는 가치를 내걸었다. 그는 광복 직후와 6·25전쟁의 혼란기에 ‘20% 포도당’과 ‘50% 포도당’ 등의 주사액(분말 형태의 항생제를 녹여 주사하기 좋은 형태로 만들어주는, 초기 형태의 수액제제)을 수입하거나 자체적으로 만들어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데 기여했다. 1959년에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형태의 수액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JW중외제약은 한국을 대표하는 제약회사가 되기까지 여러 고비를 넘어야 했다. 우선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의 열악한 상황을 극복해야 했다. 일제가 떠난 자리엔 기술도, 자본도, 의약품용 원료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일제는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약품의 생산과 유통을 철저히 통제하고 군사용 의약품을 만들지 않는 기존 제약회사나 약국은 문을 닫도록 강요했다.
당연히 광복 당시에는 제약업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린 상태였다. 그나마 몇 되지 않았던 국내 제약사들은 연이어 도산했다. JW중외제약은 이런 상황에서도 주사제 등의 생산을 이어갔다.
그러다 6·25전쟁 휴전 이후 기초의약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기에 본격적인 수액 국산화에 성공한 후 수액 전문 생산 업체로 명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1960년대 말에는 항생제 ‘리지노마이신’과 신장투석액 ‘인페리놀’ 등을 개발해 국내 최고 수준의 제약회사로 도약했다.
JW중외제약은 1970년대에 최대 50%에 가까운 연간 성장을 이어갔다. 하지만 1977년 정부가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예상치 못한 벽에 부닥쳤다. 항생제나 수액제처럼 보험 적용이 되는 약의 값을 정부가 정하게 되면서 대부분 수액제에서 이윤이 거의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W중외제약은 수액 제품들을 계속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678개에 이르는 퇴장방지의약품 중 111개가 JW중외제약 제품이다.
○ 생명존중 정신과 도전정신
JW중외제약이 수액 생산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답은 창업 초기부터 ‘생명 존중’의 가치를 강조했던 이기석 창업주로부터 찾을 수 있다. 그는 생전에 “환자 치료에 최선의 가치를 둬 사회에 공헌하고, 이에 대한 대가는 그 뒤에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 정신에 맞아떨어지는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품’이 바로 수액제였다는 것이 JW중외제약의 설명이다. 이경하 JW중외제약 부회장은 “우리 회사의 창업정신은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공유가치창출(CSV·기업이 수익 창출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 가치도 함께 추구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은 JW중외제약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겠다”는 비전을 만들었다. 구체적인 목표는 2020년 ‘가장 신뢰받는 글로벌 헬스케어 그룹’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JW중외제약은 현재 혁신신약으로 꼽히는 표적항암제(암 재발과 전이의 원인인 암줄기세포를 죽여 근원적으로 암을 치료하는 의약품)인 ‘CWP291’를 상품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수액제 부문에서도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