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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흥순 감독 “정작 어머님은 담담해 하셨다”

입력 | 2015-05-12 05:45:00

한국인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 수상의 영예를 안은 임흥순 감독. 사진제공|반달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 후 귀국
아시아 여성 노동자의 삶 담은 ‘위로공단’
40년간 봉제공장서 일한 어머니 떠올려

“어머니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셨다.”

9일(이하 한국시간)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축제인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은사자상을 품에 안은 영화 연출가이자 미술작가 임흥순(46) 감독은 수상 순간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서울 구로공단에서 40년 동안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임 감독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긴 95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영화 ‘위로공단’(제작 반달)은 바로 그 경험에서부터 출발했다.

11일 오전 귀국한 임 감독은 스포츠동아와 나눈 전화 인터뷰에서 “아주 젊은 나이가 아니라서 그저 덤덤하다”며 “수상 당시 많은 여성 노동자의 얼굴이 스쳐 지났다”고 했다. ‘위로공단’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노동현장에 몸담은 여성들의 삶을 담아낸 작품. 2010년 영화를 구상한 임 감독은 옛 구로공단의 모습을 비추고 베트남과 캄보디아 현지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제작비 마련은 쉽지 않았다. 촬영에만 2년, 편집에 또 1년이 걸렸다.

“2010년 창작공간인 서울 독산동 금천예술공장에 입주했다. 옛날 구로공단이 있던 지역이다. 주민들과 대화하면서 봉제공장에서 일한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버이날에는 베니스에 있느라 찾아뵙지도 못했다. 상을 받고 어머님께 전화 드렸더니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을 뿐이다, 난 한 일이 없다’며 담담해 하시더라.”

임 감독은 “영화에 담긴 여성 노동자의 말과 표정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고 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직접적으로 노동 현실을 보여준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며 “호주, 인도 등 아시아 심사위원의 공감도 얻지 않았을까 한다”고 말했다.

한 시대를 희생하며 살아낸 여성의 모습은 임 감독의 주된 관심 주제이기도 하다. 그의 어머니도 이에 속한다. 2013년 장편 데뷔작 ‘비념’은 제주 4·3사건에 희생당한 한 할머니의 삶을 비췄고, 현재 작업 중인 ‘환생’은 한국전쟁부터 베트남전, 이란·이라크전을 거친 또 다른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개인적으로 할머니, 아주머니들의 사고가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할 때가 많다. 그들이 우리 현실의 어려운 부분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건 희망이다. 역사도 여성의 시각으로 보면 더 객관적이고 다양 해지지 않나.” 이런 관심의 영향일까. ‘위로공단’ 스태프도 대부분 여성이다. 특히 ‘비념’에 이어 ‘위로공단’까지 함께한 김민경 프로듀서는 수상의 숨은 주역이다. “드러나지 않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해준 스태프가많다. 그들에게 감사하다.” ‘위로공단’은 7월 국내 개봉하며 11월22일 폐막하는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서 전편이 상영되는 첫 한국영화가 됐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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