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기호 소설가
“어머니, 아버지. 어버이날 축하드려요. 올해도 건강하시고요.” “그래, 뭐, 너도 생일 축하한다.” “뭐 한다고 힘들게 미역국을 끓이셨어요?” “어버이날이 뭐 별 거라고…. 할 건 해야지.”
그러곤 침묵. 서로 묵묵히 밥을 먹고 각자 회사로, 학교로 나가는 일상이 이어진 것이다.
그러던 형이 폭발한 것은, 며칠 전 어버이날이었다. 물론 이런저런 사정이 먼저 있었다. 우리 나이로 올해 서른다섯이 된 형은 벌써 오 년째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결과는 올해도 낙방. 하필 시험 결과 발표가 사월 말에 나는 바람에 집안 공기는 더 냉랭하고 스산하게 변해 버렸다. 아버지도 현직에서 퇴직해 연금으로 생활하는 처지였고, 나? 나 또한 거듭된 취업 실패에 지쳐 막 대학원에 진학한 처지였으니…. 그야말로 삼부자가 백수나 진배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맞는 어버이날이었으니… 어머니 입에서 혼잣말처럼 이런 대사가 튀어나온 것도 하등 이상할 일 없는 노릇이었다.
“남들은 어버이날이라고 자식들이 여행을 보내준다, 용돈을 준다, 하는데… 뭔 놈의 팔자가 평생 어버이날 미역국이나 끓여대고 있으니, 원….”
평상시 형 같았으면, 국으로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으련만,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누가 미역국 끓여달라고 했어요? 나는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런 줄 아세요? 나도요, 매번 생일 때마다 죄지은 기분이라고요!”
“그렇게 죄지은 거 같으면 아무 데나 취직해서 빨리 장가라도 가! 그러면 네 생일은 네 부인이 챙겨줄 거 아니야! 그러면 되겠네!”
어머니의 말에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식탁 한쪽을 내려다보다가 성큼성큼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그래도 형 생일인데, 시험도 떨어졌는데, 어머니가 너무 하네, 하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조용조용 형 방으로 걸어갔다.
형은 책상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형, 내가 아는 누나 중에 공무원이 한 명 있거든. 내가 형 생일 맞아서, 어떻게 소개팅 자리라도 한번 만들어볼까? 내가 미리 얘기는 해놨는데….”
형은 계속 눈을 감은 채, 무표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형, 엄마 말처럼 장가라도 가면….”
그러자 형이 조금 물기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너, 그거 아냐? 난 장가를 가면 어버이가 두 분 더 생긴다. 생일날 챙겨야 할 어버이가 두 분 더 늘어난다고….”
형은 5월 8일생이었다. 사위가 되든 자식이 되든, 변함없는. 나는 예전보다 형이 한 뼘은 더 안쓰러워졌다.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