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메이드 화장품 러쉬 창업자·윤리 디렉터 방한 공동창업자 로웨나 버드 동물실험 안해도 되는 방법… 이미 과학적으로 충분해요 윤리 디렉터 힐러리 존스 포장에 쓰는 스티커에 동물실험 화학품 없는지도 챙겨
브랜드 창립 2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러쉬의 공동창립자 로웨나 버드(오른쪽)와 힐러리 존스 윤리 디렉터. 이들이 들고 있는 수제 비누는 물론이고, 러쉬에서 만드는 모든 제품은 공정무역을 통해 얻은 식물성 재료로만 만들어진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러쉬는 이들의 발랄한 머리색처럼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브랜드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독한 원칙주의자들의 모임이다.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화장품 실험에 반대하고,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포장용기 재사용을 원칙으로 한다. 또 노동착취가 일어나는 농장과는 단호하게 거래를 끊어 버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 939개 러쉬 매장에서는 자연에서 난 식물 재료를 공정무역을 통해 공급받아 사람에게 테스트를 마친 제품만 판매한다.
이처럼 러쉬에서 동물, 환경, 공정무역에 대한 ‘3대 원칙’을 지키기 위한 집념은 마지 종교적 신념으로 여겨질 정도다. 20년 동안 러쉬가 추구해 온 ‘윤리적 이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들어 봤다.
힐러리 존스=한마디로 정의하면 러쉬의 공식 ‘잔소리쟁이’다. 러쉬는 이미 창립자들이 확고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시작한 브랜드지만, 끊임없이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는 잔소리꾼이 있어야 한다. 한국 매장에 방문해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까지 한국 매장에서는 고무줄을 묶어 종이 포장 매듭을 지었지만, 최근에는 스티커로 바뀌었다. 이 스티커에 묻은 끈끈이에 동물실험을 한 화학재료가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확인하라고 잔소리하는 게 내 역할이다.
로웨나 버드(이하 버드)=동물실험은 기업들의 오래된 관습에 불과하다. 정교하고 과학적인 테스트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화장품에 들어가는 화학 성분을 토끼 눈에 넣어 보고 눈이 머는지 아닌지를 확인해야만 그 성분이 안전한지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존스=러쉬는 20년 동안 동물 실험을 하지 않았고, 동물성 재료를 사용한 적이 한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색약 치약 샴푸 기초화장품 등 몸에 바르는 거의 모든 화장품과 생활용품에 대한 구색을 갖추고 있다. 러쉬의 존재 자체가 잔혹한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도 제품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증거다.
버드=낯선 재료를 통해 여성들에게 예뻐질 수 있다는 환상을 파는 방법에 불과하다. 그동안 화장품으로 나오지 않았던 재료로 큰 미용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는 것이다. 달팽이 크림이나, 말의 양수를 추출해 만든 크림 등 이런 환상을 이용한 제품이 갈수록 많이 나온다. 하지만 자연이 이미 훌륭한 식물성 원료를 무궁무진하게 인류에게 선물했다. 호호바오일, 아몬드오일 등 대체 가능한 재료들이 얼마든지 있다.
―20년 동안 동물실험 근절 캠페인으로 얻은 것은….
존스=2년 전 유럽에서 동물실험을 전면 금지하는 법이 통과됐다. 동물을 상대로 실험을 한 성분이 일부라도 들어 있는 화장품은 판매가 금지된 것. 유럽의 화장품 회사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 화장품 기업이 유럽에 화장품을 수출하려면 이 기준을 지켜야 한다. 전 세계 화장품 기업이 유럽시장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대체 실험 방법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동물실험의 대안이 있나.
존스=몇몇 국가에서는 아직도 동물을 대상으로 한 독성 테스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의 관성을 바꾸기 싫어하는 기업들의 핑계에 불과하다. 동물실험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한국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고….
존스=한국에서도 점차 동물 실험을 반대하거나, 환경, 공정무역 등에 대한 기업 이슈가 부각되고 있다. 기업이 앞장서서 사회를 바꿀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힘은 결국 소비자의 지갑에서 나온다. 개인은 사회를 바꿀 힘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소비자 개인이 어디에 돈을 쓸 것인지 윤리적인 잣대로 결정하기 시작한다면 기업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한국 소비자들이 기업과 정부, 단체 등에 이 상품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거래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불편한 질문을 계속해 주기 바란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