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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의 히트&런]나보다 팀? 정성훈은 빈말 아니다

입력 | 2015-05-14 03:00:00

타격 선두 데뷔 후 최고활약에도 LG 하위권 처지니 풀죽어 지내
홈런 3개 쳐도 패하면 저기압… 본인 못 쳐도 이기면 정말 기뻐해
“실력-성적 모범 못되면 힘들어”




LG 정성훈(왼쪽)이 2013년 7월 9일 롯데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치고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던 이진영에게 축하의 바나나를 건네고 있다. 동아일보DB

팀이 지면서 연패에 빠졌다. 그런데 자신은 그날 경기에서 안타 4개를 쳤다. 그 선수의 기분은 어떨까. 겉으로 심각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웃는 선수가 대부분이다. 그런 선수를 나쁘게 말하려는 건 아니다. 팀 경기이면서 동시에 개인 경기인 야구라는 종목 특성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자기도 잘되고 팀도 잘되는 게 가장 좋으련만 세상일이 어디 그리 쉽게 되던가. 굳이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열에 아홉, 아니 백에 아흔아홉은 개인 성적을 택하기 마련이다. 개인 성적은 연봉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개인 기록보다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런 상투적인 인터뷰는 거의 대부분 진실이 조금 가미된 거짓말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지금 소개하려는 선수는 정말로 팀을 먼저 생각하는 한 명이다. 오랫동안 봐 오면서 느끼기도 했고, 수년간 함께 생활한 구단 관계자로부터도 확인한 얘기다. 그는 LG 내야수 정성훈(35)이다.

요즘 야구장에서 만날 때마다 정성훈은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13일 NC와의 경기 전까지 그의 성적은 타율 0.358(109타수 39안타), 3홈런, 17타점으로 타격 2위였다. 1999년 데뷔 후 그는 지금껏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낸 적이 없다.

이 호성적을 갖고도 힘들다고 하면 다른 선수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싶지만 그는 정말로 힘들어했다. 이유는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는 팀 성적이다. 5월 들어 연패를 거듭하며 LG는 전날까지 9위(15승 20패)로 처져 있었다. 팀 성적이 나쁜 게 자신의 잘못은 아니다. 오히려 승리에 기여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팀에 부채 의식을 갖고 있다.

팀 관계자는 정성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성훈이는 한 경기에 홈런 3개를 쳐도 팀이 지면 고개를 숙인다. 그런 척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런다. 그런데 자기는 안타 하나 못 쳤어도 팀이 이긴 날은 정말 신나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선수다.”

돌이켜 보면 정말 그랬다. 2009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LG에 온 뒤 그는 지난해까지 5차례나 3할 타율을 쳤다. 그렇지만 그는 항상 미안해했고, 시즌 내내 스트레스를 안고 살았다. 머리 곳곳에 구멍이 뚫리는 탈모증을 가리려 머리를 기른 적도 있다. 정성훈은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로서 실력과 성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힘들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성훈은 평소 낯을 많이 가린다. 인터뷰도 어지간해서는 잘 하지 않는다. 자신이 빛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진들에서 볼 수 있듯 그는 보통 선수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똘끼’ 넘치는 행동을 자주 한다. 무척 기분이 좋을 때 이런 행동이 나온다. 자기의 야구가 아니라 팀이 잘나갈 때 그렇다.

올해는 아직 그의 4차원적인 행동을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팀 분위기가 아직 살아나지 않아서일 거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그는 휴식일인 11일에도 잠실구장에 나와 한참 어린 후배 선수들과 함께 특별 타격 훈련을 했다. 그 덕분인지 13일 NC전에서는 톱타자로 출전해 홈런 1개 포함 4타수 4안타의 맹타를 휘두르며 팀 승리의 주역이 됐다. 타율이 0.381로 1위가 됐지만 그는 자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팀의 연승을 이어가서 기쁘다”는 짧은 소감을 밝혔다.

프로는 냉정한 세계다. 생존 경쟁이 펼쳐지는 전쟁터이기도 하다. 이런 치열한 야구계에서 그처럼 순수한 ‘천연기념물’이 존재하는 게 신기할 뿐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