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대학가 은어다. 학교에서 장기간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오래 전에 움직임을 멈춰 버린 화석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다. 1년간 졸업을 미루는 ‘5학년’으로도 모자라 수년째 학교에 붙어 있는 ‘화석선배’라니.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단어다.
경제가 한창 성장할 때, 그러니까 외환위기 전 화석선배란 없던 시절에 대졸 신입 사원에게는 ‘평생직장’이 있었다. 그들은 여러 부서를 거치며 일을 배웠다. 학교로 치면 회사가 짠 커리큘럼대로 교육받았다. 때가 되면 승진했고 연차가 오르면 연봉도 올랐다.
국내 대기업 마케팅팀에 취재 갔을 때다. 한 직원은 “공채 출신이 경력직에게 역(逆)차별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팀원 절반은 경력직이었고, 경력직의 승진이 더 빨랐다. 대부분 중견 기업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은 뒤 옮겨 왔다. 학생으로 치면 각자 알아서 공부한 셈이다.
실제로 기업들은 신입 직원 채용에 몸을 사린다. 취업 정보 업체인 사람인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경력직 채용 공고가 신입 채용 공고보다 4.6배나 많았다. 이 배수는 2013년 3.4배, 2014년 3.9배 등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신입 직원의 등용문이 좁아진다는 뜻이다. 이는 저성장이 고착화되면서 신입 직원에게 투자할 여력이 떨어진 영향이 크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신입 직원 1명이 회사에 정착하기까지 1년 반 동안 평균 6000만 원이 투입된다. 더욱이 내년부터 정년 연장으로 신입 직원을 채용할 여력이 더 줄어든다.
이처럼 고용 환경이 바뀌는데 노동시장은 여전히 경직돼 있다. 연차가 높아지며 연봉이 올라가는 호봉제도 굳건하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20∼30년 차 근로자는 신입직원보다 2.83배나 많은 임금을 받는다. 연차보다는 직무에 따라 임금을 주는 스웨덴(1.13배)과 영국(1.50배), 독일(1.88배)보다 훨씬 높다. 기업들은 신입 직원을 뽑으면 고(高)비용을 치러야 하니 채용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인사담당 임원은 “경력직 선호가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토로한다.
현재 청년 실업률은 잔인하리만치 높다. 4월 청년 실업률이 10.2%로 치솟으며 외환위기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청년 실업률이야 소폭 오르내릴 수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 경제가 예전처럼 연 7∼8%대로 성장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의 경직성을 개선해야 함은 물론이다. 취업 준비생도 언제까지 ‘실업률이 최악이어서’ ‘신입을 뽑는 기업이 적어서’ 등의 볼멘소리를 할 수는 없다. 냉혹하지만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