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해인사승가대학장 원철 스님
지난해 서울 동국대에서 열린 연등회 행사에 참석한 스님과 불자들이 두손을 모아 세상에 대한 부처님의 자비를 기원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나의 그리움을 알아/새벽안개되어 내게 온 당신/당신을 그리워하는 이 시간에/새벽안개 되어 내게 오시니/눈물이 날만큼 좋습니다”라는 시인 김정래의 시 몇 줄을 게송 삼아 읊조리기를 마칠 무렵 릭샤는 멈추었다. 일행이 모두 도착할 때까지 둔덕길에서 늪 언저리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연꽃은 마른 줄기만 듬성듬성 남긴 채 자기 흔적을 스스로 지워 버린 상태였다. 붓다께서 2600여 년 전 이 근처에서 태어나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이 세상 사람을 편안하도록 만들겠다(아당안지·我當安之)’는 다짐을 하자 내딛는 발끝마다에서 연꽃이 피어났다고 했다.
해가 뜰 무렵 안개가 사라지면서 오래된 큰 나무 몇 그루와 연못이 제대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경전을 통해 설명하는 룸비니 동산은 절집 안의 이상향이다.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에 반해 버린 마야 부인이 친정집에 몸을 풀러 간다는 현실조차 잠시 잊게 만드는 오월 꽃동산은 그 자체로 샹그릴라였다. 1400여 년 전에 이 동산을 찾았던 당나라 현장 법사(622∼664)는 ‘물이 맑아 거울과 같고 주변에는 갖가지 꽃이 다투어 피고 있다’는 기록을 남겼고 마야 부인은 출산 후 설산에서 발원하는 기름처럼 반짝이는 맑은 개울인 유하(油河)에서 몸을 씻었다는 사실까지 함께 언급하고 있다. 아홉 마리 용이 태자를 목욕시키기 위해 번갈아 입으로 내뿜었다는 물은 아직 이 연못의 어딘가에 한 방울이라도 남아 있을까?
이 정원은 마야 부인의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가 만들었다고 전한다. 두 어른의 인생 황금시절에 조경했다. 하늘정원의 아름다움을 땅 위에 그대로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은 명품이었다. 아예 화원 명칭까지 할머니 이름인 ‘룸비니’라고 붙일 정도로 금실을 자랑했다.
잎들이 꽃보다 아름답고 눈이 부시도록 푸른 연둣빛 계절이다. 눈 닿는 모든 곳은 모두가 룸비니 동산만큼 아름답다. 그래서 일년 가운데 오월 한 달만큼이라도 세상 모든 이를 가족처럼 여길 수만 있다면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건 바로 룸비니 동산이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