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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요람에서 무덤까지… 生과 死 함께 하는 불교 꿈꾼다

입력 | 2015-05-15 03:00:00

부천 석왕사, 국내 최초 사찰 내 장례법당
지금도 조계종 내에서 유일… ‘영묘각’이라는 납골당에는
유족의 장례방식 인정해 이웃종교 알리는 십자가 표지도

“누군가의 죽음을 위로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만큼 큰 공덕이 있겠습니까?”




경기 부천 석왕사 주지 영담 스님이 7일 사찰 내 설치된 납골당에서 장례법당에 얽힌 사연을 얘기하고 있다. 영담 스님은 “이제는 사찰들이 즐거운 일은 물론 어렵고 힘든 일까지 함께 나눠야 미래 불교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천=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생사대사(生死大事)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는 생에 비해 죽음의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합니다. 불교 역시 사찰에서 영가(靈駕·영혼)를 위로하는 천도재를 치르지만 죽음에 대해 깊이 관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불교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통의 하나인 죽음을 끌어안을 때 진정한 생활불교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7일 경기 부천시 석왕사에서 만난 주지 영담 스님(64)의 말이다.

경내는 봄기운이 무르익고, 부처님오신날을 반기는 연등으로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스님은 뜻밖에 불교와 죽음의 관계를 화두로 꺼내들었다.

1997년 석왕사는 신도를 포함한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내 최초로 사찰 내에 장례법당을 열었다. 병원 장례식장의 비싼 장례용품이 유족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시설도 비위생적이라는 비판이 거세던 시기였다. ‘불길하게 절집에 무슨 장례식장을 두냐’ ‘미관상 좋지 못하다’ ‘신도들 줄어든다’ 등 다양한 이유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영담 스님은 장례법당을 밀어붙였다. 스님의 말이 흥미롭다. “장례법당에 시비를 걸 때마다 ‘시신과 관 바로 위에서 머리를 두고 자는 내가 멀쩡하지 않느냐’, 이러면서 넘겼어요. 자고로 누군가의 죽음을 위로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만큼 큰 공덕(功德)이 있겠습니까?”

장례법당 설치 뒤 거의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현재 1개월 평균 100여 건의 장례가 치러지고, 납골당에는 1600여 기가 모셔져 있다.

이날 찾은 납골당 영묘각(靈廟閣)은 사찰 내에 있지만 다른 곳과 다를 게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곳곳에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임을 알리는 십자가 표지가 있었다는 것. 이곳은 사찰이 운영하는 장례법당과 납골당이지만 유족들이 원하는 장례방식을 그대로 인정한다. 그래서 적지 않은 이웃종교 신도들이 가족의 납골을 모시고 있다.

석왕사의 장례법당은 지역에서 사찰과 불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애써 포교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을 찾아 나서지 않아도 장례 때마다 수백 명이 찾아와 사찰에 대한 거리감을 줄였다. 이곳이 처음에 문을 열었을 때 반발했던 주변 병원 장례식장들도 서비스와 비용 면에서 크게 개선됐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대한불교조계종 내에서 지금도 유일한 사찰 내 장례법당이다. “묘지를 쓰는 장례문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과거의 유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가까운 곳에 망자의 유골을 모시고 제사와 추모를 드리는 방식으로 가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도심의 전통사찰이 문을 개방한다면 그것 자체가 불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훌륭한 포교입니다.”

석왕사가 운영하는 룸비니 유치원 원생들. 석왕사 제공

석왕사는 유치원과 노인대학을 비롯해 여러 복지 시설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날 영담 스님과 함께 둘러본 룸비니수영장도 사찰 내에 있는 유일한 어린이 수영장이다. 석왕사는 30년 가까이 전인 1987년 수영장을 개관했다. 사찰 내 유치원이 운동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계속 외부 시설을 빌려야 했기 때문에 아예 수영장을 짓기로 한 것이다. 사찰 내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고 수영장을 지을 때도 “아이들이 몰려다니면 시끄러워 경건한 신행(信行) 분위기가 깨진다”는 반대 의견이 나왔다. 대신 번듯한 부처님을 모시고 오래된 법당을 새롭게 조성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불심 깊은 신도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미안할 따름이죠. 하지만 부처님 말씀이라며 억지로 들으라고 하면 요즘 젊은 사람들이 듣습니까? 어려서부터 절을 어려워하지 않고 동네 스포츠센터처럼 자주 드나들어야 불심이 스며들죠.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하고, 돌보고, 그 마지막까지 위로하고 책임져야죠. 사람들의 삶에 밀착하지 않으면 우리 불교의 미래는 없습니다.”

부천=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