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소 예비군들이 전하는 당시 현장
곳곳에 혈흔… 널브러진 전투화 육군 헌병과학수사대 수사관들이 14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예비군 훈련소 내 사격장을 살펴보고 있다. 육군 중앙수사단이 이날 공개한 전날 사고 현장에는 혈흔이 곳곳에 보였고, 피해자들의 전투화가 널려 있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3일 오전 10시 30분경 서울 서초구 내곡동 훈련소 사격장에 있던 문모 씨(22)의 기억이다. 그는 사격 전 총기 안전을 점검하던 중 자신을 겨누고 있는 최모 씨(23·사망)를 발견했다. 문 씨 바로 다음이 최 씨가 사격할 차례였다. 문 씨는 “화가 났지만 그냥 넘어갔다. 사격 이후 (최 씨가) 내 표적지를 보더니 ‘잘 쏘시네요’라며 해맑게 웃었다”고 전했다. 몇 분 뒤 사격장 근처에서 쉬고 있던 문 씨는, 최 씨가 표적지에 총 한 발을 쏘고 난 뒤 갑자기 뒤돌아서 ‘웃는 얼굴’로 다른 예비군을 쏘는 장면을 목격했다.
최 씨와 동시에 사로에 들어갔던 예비군 김남형 씨(25·15사로)는 최 씨가 “난사하기 직전 2사로에 있던 예비군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고 전했다. 김 씨는 또 “사격 직전 최 씨는 조교에게 계속 칭얼거리며 사로를 바꿨다”며 “마지막에 최 씨 사로는 조교와 멀리 떨어졌고 총기를 고정하는 안전고리도 매우 허술했다”고 전했다.
육군 관계자는 “지침에 따르면 사고 발생 시 훈련 조교(현역 병사)와 통제 장교가 제압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당시 6∼7m 떨어져 (총을 쏘고) 있는 상태에서 곧바로 조치를 못하고 몸을 피했다가 총성이 멎은 후 부상자들에게 응급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최 씨가 유서 쓰던 장면을 목격한 예비군도 있다. 이번 훈련 당시 최 씨와 같은 층 예비군 생활실을 썼던 정동화 씨(26)는 12일 오후 10시경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손바닥만 한 메모지 2장에 글을 쓰고 있는 최 씨를 발견했다. 정 씨는 최 씨에게 “뭐 쓰고 있어요”라고 물었고 최 씨는 “편지 쓰고 있어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조사 결과 당시 최 씨가 쓰고 있던 것은 자신의 유서로 확인됐다.
최 씨는 3월부터 남자 초중학교 동창 1명에게 10차례에 걸쳐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태명 중앙수사단장은 이날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서 “최 씨의 휴대전화를 확인한 결과 동창생 1명에게만 총 100여 건의 문자를 보냈고 이 중 10건의 문자가 자살을 암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씨는 3월 16일 ‘나 자살(할) 계획이야’라는 문자를 시작으로 4, 5월에도 ‘5월 12일(예비군 훈련 시작하는 날) 난 저세상 사람이야’ ‘실탄사격하는 날 말하지 않아도 (자살) 예상’이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육군 관계자는 “이 동창생은 수신 거부를 걸어 제때 확인을 못했고 뒤늦게 확인했을 때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2시 먼저 퇴소한 예비군과 사상자를 제외하고 내곡동 훈련소에 남아 있던 예비군 510여 명은 전원 퇴소했다.
김재형 monami@donga.com·정성택·천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