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균 문화부 기자
“누가 해줬니? 바른대로 말 안 할래?”
당혹스러움에 얼굴이 벌게져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것으로 혐의 확정이었다. 중3 때 일이다. 유치하고 나약한 심사라 손가락질 받겠지만 그 경험은 두 가지 생각을 틔웠다. ‘그림 따위에 한눈팔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야겠다.’ ‘학교라 불리는 이 괴상한 공간을 어떻게든 빨리 벗어나야겠다.’
미술 활동에 대한 평가 기준이란 게 있기는 있는 걸까. 작품 디테일에 대한 판단은 어느 정도 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비엔날레에서 상 받은 작가는 반드시 뛰어난 예술가일까. 심사위원들은 코웃음을 치겠으나, 도저히 한 줄로 세울 수 없는 덩어리들이 혼재한 드넓은 행사장을 거듭 돌아보며 생각한 건 하나였다. ‘닭과 치타와 송아지와 오리를 나란히 앉혀 놓고 누가 더 예쁘게 생겼는지 따지려 드는 일과 다를 게 뭔가.’
미술 분야에서 오래 활동한 권위자의 안목과 취향에 의지해 최근 경향을 정리하고 추천작을 소개받는 자리. 문외한인 내 눈에 비엔날레의 취지는 그 정도가 적절해 보였다. 실험적인 관객 참여 퍼포먼스가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고 한국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가 은사자상을 받은 결과는 그렇게 볼 때 파격이 아니다. 제3세계 예술의 가치를 재조명하겠다는 취지를 노골적으로 펼쳐낸 나이지리아 출신의 올해 비엔날레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의 입맛에 잘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한국 작가 최초의 본전시 수상을 폄훼할 마음은 없다. 노동자와 서민의 시선으로 사회 부조리를 진득하게 성찰해 온 작가가 비엔날레를 계기로 주목받게 된 건 환영할 일이다. ‘정부와 대기업을 비판한 영화를 윗선에서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는 어이없는 뒷공론에 통쾌하게 한 방 먹인 결과이기도 하다.
수상작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다양성을 포용하는 척하며 그 우열을 겨루는 이율배반 이벤트에 대한 지나친 조바심이 슬슬 잦아들길 희망한다. 현장에서 본 베니스 비엔날레는 찬란했던 과거의 품에서 안이한 응석만 부리려 하는 유럽 도시의 관광 상품에 지나지 않았다.
손택균 문화부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