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청소년들의 남다른 스승의 날
여명학교 학생들 ‘깜짝 세족식’… “北의 교사는 黨 지시받는 존재”
“존경합니다” 말에 교사들 눈시울
“고맙구나” 스승의 날인 15일 서울 중구 여명학교에서 열린 세족식 행사에 참가한 탈북 학생들이 선생님들의 발을 씻겨 드리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오전 10시경 한 교실로 입장한 교사들 눈에 들어온 것은 2열로 놓인 24개의 의자와 97명의 학생이었다. 학생들은 가수 핑크토끼의 ‘엄마에게’라는 곡을 개사해 “선생님 손을 잡고 같이 걸을 때 대화를 나눌 때 모든 시간에 감사해요. 선생님 내 곁에 항상 있어 주세요”라고 노래했다. 학생 24명이 장미꽃잎을 띄운 온수를 채운 대야를 들고 와 교사 앞에 앉았다.
뜻하지 않은 세족 행사에 교사들은 “와” 하는 탄성을 터뜨렸다. 운동화를 신고 온 한 남자 교사는 “어휴, 발 안 씻고 와서 냄새 많이 날 텐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가만히 자신의 발을 주무르는 학생을 보던 한 여교사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학생들은 교사들의 양쪽 발 모두를 씻겨준 뒤 정성스레 수건으로 닦았다. 그러고는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하자 교사들은 “고맙다, 우리 끝까지 함께 가자”며 제자들을 꽉 끌어안았다.
학생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현주(가명·20) 씨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스승의 날 행사는 의례적인 것이 아닌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현하는 날”이라고 전했다. 일반 학교에 다니면서 스승의 날 행사를 많이 봤다는 김 씨는 “한국 학생들이 스승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약한 것 같다”고 했다. 황희건 교무부장은 “탈북 청소년들이 고마움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며 이들이 탈북 과정과 한국에서 받은 편견 등 상처가 치유되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차길호 기자 ki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