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훈 논설위원
다음 소환 언제 할지 감감
노무현 정권 초반인 2003년 대선자금 수사가 술술 풀린 것은 SK그룹 ‘비자금 사용 내역서’를 검찰이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0대 그룹 전체로 대선자금 수사를 확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검찰이 비밀장부를 찾지 못했다. 저인망식 조사 결과 장부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여야를 망라한 대선자금 수사는커녕 리스트의 진상조차 확인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성 회장의 측근이 “2012년 10월 중순경 성 회장이 현금 6억 원을 찾아와 3개의 가방에 나눠 여당 핵심 인사 2명과 야당 중진 1명에게 건넸다”고 본보에 증언했다. 성 회장이 야당 의원에게 돈을 건넨 장소와 시점에 관해선 정확하게 묘사했다. 꽉 막혀 있던 대선자금 수사의 물꼬가 트일지 모른다.
그러나 검찰은 여전히 곤혹스럽다. 그 측근이 “성 회장이 돈이 든 가방을 갖고 어느 식당에서 야당 의원을 만나고 난 뒤 가방 없이 돌아왔다”고 했지만 직접 목격자는 아니다. 그래서 보강 증거가 필요하지만 벽이 높다.
전·현직 대통령비서실장 3명은 사정권에서 벗어난 듯하다. 성 회장이 김기춘, 허태열 전 실장에게 10만 달러와 7억 원을 건넸다는 진술은 있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 검찰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닌 두 사람에 대해 서면조사나 방문조사를 검토하지만 여론의 비판을 의식해 고심 중이다.
이제 욕먹을 일만 남았다
검찰 내에선 “이제 욕먹을 일만 남았다”는 말이 나온다. 대검에서 최근 수사팀에 인력이 더 필요하면 요구하라고 했지만 고사했다고 한다. 수사 검사를 증원해도 시킬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검찰이 ‘호랑이 등’에 떼밀려 올라탔지만 애초부터 쉬운 수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출구전략’ 운운하는 얘기가 나와선 곤란하다. ‘끝이 날 때까지는 끝이 난 것이 아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김진태 검찰총장은 수사를 직접 챙기며 수사팀을 독려하고 있다. 30여 년 검사 생활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이 전 총리와 홍 지사를 기소한 뒤 머지않아 검찰의 실력이 도마에 오르는 순간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