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정치인의 거짓말에 관한 ‘명언’을 잘도 쏟아냈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승리다.’ ‘성공은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는 유일한 재판관이다.’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더 쉽게 넘어간다.’ 히틀러는 마키아벨리의 추종자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때로 개인적 차원의 미덕을 접어두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마키아벨리가 상정한 군주는 진실로든 거짓으로든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이 히틀러와 다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이후 민정 이양 약속을 깨고 대통령이 됐다. 내게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1992년 대통령선거 패배 후 눈물을 흘리며 정계 은퇴를 선언하던 장면이 생생하다. 그러나 그는 1997년 대선에 나와 당선됐다. 언젠가 기자가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하느냐”고 묻자 그의 대답이 궤변이라면 궤변이고 걸작이라면 걸작이다.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뿐이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진실을 이기는 것은 없다”며 검찰에 출두한 날, 김종필(JP) 전 총리는 기자들에게 “정치를 하려면 때로는 편의상 말도 바꿀 수 있지만 절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내가 현장에 있었다면 말 바꾸기와 거짓말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어봤을 것이지만 기자들은 더이상 묻지 않았다. JP는 거짓말이 아닌 한에서의 말 바꾸기만 했다는 것인가. 역시 DJ의 말처럼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다.
▷JP와 ‘포스트 JP’로 불렸던 이 전 총리의 관계가 묘하다. 같은 충청 출신이긴 하지만 이 전 총리는 2002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으로 이적하면서 JP가 이끈 자민련의 몰락을 재촉하고 새누리당에서 포스트 JP로 커왔다. JP만큼 정치 자금의 현실을 잘 아는 사람도 없다. JP의 말은 “내가 당신도 알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도 아는데…”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대중이란 정계 은퇴 같은 큰 거짓말은 봐줄지라도 받은 돈 안 받았다든가, 혼외자식 모른다고 하는 거짓말은 용서하지 않는 법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