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셀 확인할 수 없는 PDF로 공개…망원렌즈로 거리감 줄인 듯
북한이 5월 8일 실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수중 사출시험을 담은 ‘노동신문’ 5월 9일자 1면 사진.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솟아오르는 미사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사진출처=노동신문
북한 ‘노동신문’이 5월 9일자 지면을 통해 ‘김정은 동지의 직접적인 발기와 세심한 지도 속에 개발 완성된 우리 식의 위력한 전략잠수함 탄도탄 수중 시험발사가 진행됐다’며 여러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바닷바람에 산발이 된 헤어스타일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왼손에 담배를 든 채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다. 뒤로는 수면 위로 떠오른 잠수함이 보인다.
북한은 과연 잠수함에서 탄도미사일을 성공적으로 쏘아올린 것일까. 미국의 북한 동향 전문 웹사이트 ‘38노스’가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잠수함 기지 인근의 바지선을 찾아내면서, 이날 공개된 사진이 조작됐다는 반론이 만만찮은 힘을 얻고 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원화상 송출하지 않는 이유는?
첫 번째가 가장 흔한 데다 가장 선명한 사진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임은 불문가지다. 고해상도 사진은 김정은 얼굴의 점과 손목시계 브랜드까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두 번째 방법은 북한이 김정은 체제 출범 후인 2011년 2월 17일부터 전자문서 형식인 PDF로 당일자 신문지면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북한은 당일 신문을 새벽에 띄우고 24시간 후 삭제한다. 이 시간 동안 한국 정부기관과 사전 허가를 받은 언론사에서는 파일을 내려받아 이미지를 사용한다. 세 번째 방법은 정지 사진 이미지가 없을 때 사용하는 경우로 해상도가 아주 낮다.
통상 PDF 지면에서 사진을 오릴 경우 원본 사진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이미지 수준은 떨어진다. 노동신문의 경우 신문에 써도 원본과 거의 유사할 정도로 높은 해상도의 사진을 올린다. 북측이 정교하게 계산해 송출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원화상처럼 크게 확대해 세부 정보를 확인할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번에 공개된 시험발사 사진도 원화상이 아니라 노동신문 PDF를 통해 외부 세계에 전해진 것이다. 원화상이 아닌 PDF 이미지에서는 조작 픽셀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픽셀이 어색하다는 점을 들어 조작을 주장하는 일각의 견해에 신뢰성이 적은 이유다.
또 다른 가설은 ‘최고존엄이 위험한 미사일 시험 현장 바로 옆에서 참관할 리 없다’는 주장이다. 합성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서 있는 배 위에 카메라맨이 움직일 수 있는 일정한 공간만 확보돼 있었다면, 표준렌즈보다 조금 길고 신문기자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70~200mm 망원렌즈로도 충분히 촬영할 수 있는 앵글이라는 게 대다수 사진기자의 견해다. 발사가 이뤄진 현장과 김정은이 서 있는 배 사이의 거리가 사진에서 느껴지는 것보다 실제로는 훨씬 멀다 해도, 망원렌즈로 촬영하면 거리감을 대폭 줄일 수 있다.
폐쇄국가라는 오명에 어울리지 않게 북한은 엄청난 양의 사진을 인터넷과 뉴스통신사를 통해 국제사회에 배포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 사진 양은 더욱 증가했다. 김정은은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달리 북한 사회에서 정치적 실적이나 네트워크를 갖지 못한 채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랐고,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기 위해 이미지를 통한 광고와 홍보를 공격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2012년 7월 26일자 노동신문의 경우 6개 지면에 총 28장의 김정은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1년에 365장 이상의 김정은 사진이 실리는 셈이다.
이 가운데 조작 사진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특히 최고지도자가 등장하는 ‘1호 사진’이 조작될 가능성은 1% 미만이다. 연출은 하되 조작은 하지 않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작 사실이 외부 관찰자에 의해 확인될 경우 담당자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사전에 계산된 방식으로 연출하고 철저한 검열을 거친 후 매체에 게재함으로써 책임을 분산하는 구조에 가까워 보인다.
지도자 뒷모습의 의미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잠수함을 배경으로 웃는 모습. 사진출처=노동신문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달리 김정은 시대 들어 특히 지도자의 뒷모습 사진이 자주 눈에 띈다. 이번에도 손짓을 하는 김정은 뒤에 카메라가 있다. 저 멀리 화염을 뿜으며 상승하는 미사일이 보인다. 지도자의 모습을 뒤에서 촬영한 사진은 지도자와 읽는 사람이 무언가를 ‘함께 본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김정은이 지도하는 각종 건설 현장과 군사 훈련을 강조하는 촬영기법이다.
이 같은 기법은 주민들에게 부유하고 강한 북한을 보여주고 싶은 김정은의 열망을 반영한다. 손을 들어 길잡이 노릇까지 하고 있다. 방금 전까지 지니고 있던 망원경을 옆에 있는 보좌관에게 넘겨주고 포즈를 취했을 것이다. 이렇듯 김정은이 리더 이미지를 확보하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포토샵 보정 여부보다 훨씬 관심을 기울여야 할 본질이 아닐까.
변영욱 동아일보 사진기자 cut@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5년 98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