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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 변수, 3개 시나리오로 해부한 평양의 속셈

입력 | 2015-05-17 16:49:00

[北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파문]
당장은 한국, 최종은 미국 겨눈 ‘방어불가능’의 한 수




미국의 북한 군사 전문가 조지프 버뮤데즈가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를 통해 지난해 10월 공개한 북한의 2000t급 신형 잠수함(1)과 건조가 진행된 신포조선소(2) 위성사진, 잠수함 구조도(3). 한국 국방부는 5월 8일 북한의 미사일 사출시험이 이 잠수함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진 제공=Digital Globe


잠수함작전 상황실.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 종합상황실과는 별도로 마련돼 있는 이 방은 최고 수준 보안으로 악명이 높다. 관련 요원과 사령관 외에는 부대 주요 참모도 출입이 엄격히 통제될 정도. 해군작전사령관은 반드시 이 방에서 보고받은 뒤 일일 회의를 주재한다.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각국 잠수함 전력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 가능한 모든 정보가 이 방의 스크린에 투사되기 때문이다.

감시 역량이 집중되는 초점은 당연히 북한이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국방부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주요 해군기지의 북측 잠수함 70여 척 가운데 위성사진 등을 통해 정박이 확인되는 수량과 정비창에 들어가 있는 수량은 얼마인지 등이 실시간 단위로 점검된다. 문제는 ‘미(未)식별’로 분류되는 잠수함. 훈련이든 작전이든 시야에서 사라진 경우다.

북한 잠수함의 이동 상황은 이렇듯 한미 양국이 총력을 기울여 추적하는 핵심 정보다. 한반도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는 경우 미 해군 잠수함이 동해에 투입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에 가깝다. 마양도 등 북한 잠수함 기지 인근 해저에 조용히 대기하던 이들 미군 잠수함은 북측 잠수함이 기지를 빠져나올 때 바로 추적을 시작한다. 국제법으로 따지면 영해 침범이지만, 탐지가 불가능한 바다 밑 차가운 현실 세계에서 그러한 형식 논리는 개입할 틈이 없다.

‘제2격’의 신화

음문(音文). 잠수함 엔진과 스크루가 내는 소음의 고유 주파수를 일컫는 말이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잠수함마다 소리가 다르다. 수십 년에 걸친 작전을 통해 미군은 북측 잠수함의 음문을 모두 파악해두고 있다. 마양도 기지 북측 출구를 빠져나온 잠수함이 상어급인지 로미오급인지, 소나(sonar)가 빨아들인 소리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위성 시야에서 사라진 배의 위치를 계속 추적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문제는 만에 하나 놓치는 경우다. 제아무리 강력한 소나도 탐지 범위는 수십km를 넘을 수 없다. 디젤엔진을 사용하는 재래식잠수함은 핵추진잠수함보다 엔진 소음이 크지만, 속도가 느린 만큼 바닷물을 헤치며 내는 소리는 작다. 한 번 놓치면 추적하기는 더 어렵다는 뜻이다. P-3C 해상초계기나 링스 헬기 같은 항공자산에 최신예 구축함을 모두 동해에 쓸어 넣는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들 전력은 기본적으로 상대 잠수함이 접근해 오는지를 확인하는 게 목적이지 드넓은 바다에서 찾아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은 상대 핵무기로 자국 영토가 초토화된 후에도 핵잠수함이 살아남는다면 보복을 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름하여 ‘제2격(Second Strike)’이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지상에 있는 상대 핵무기를 ‘박멸’한다 해도 잠수함만큼은 완전히 제거할 수 없으리라는 것. 상대 역시 이를 알고 있으므로 감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게 된다는 논리에 따라, 각각의 핵잠수함은 지구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수백 기 핵미사일로 중무장했다. 역설적으로 이 시기 전략핵잠수함은 핵전쟁의 참화를 막은 일등공신이었다.

5월 8일 북한이 공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 모습은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 북한 잠수함이 미사일을, 그것도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을 쏠 수 있다면 피격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공개된 사진만으로는 아직 많은 것이 미지수이긴 해도, 꼼꼼히 따져보면 몇 개의 시나리오가 모습을 드러낸다. 시나리오마다 현실성과 남아 있는 시간에 적잖은 차이가 있지만 ‘다른 국면’이 시작됐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변수는 크게 두 가지. 플랫폼 구실을 할 잠수함과 여기서 발사될 미사일이다. 먼저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된 북한의 2000t급 잠수함에서 미사일을 발사한다는 개념 자체가 서방 주요 국가들에게는 어불성설로 들린다. 바닥부터 함교까지 억지로 발사관을 단 한 개 끼워 넣었다 해도 작은 동체가 버텨내기 쉽지 않고, 최소한 3000t급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 큰 한계는 추진체계다. 북한 잠수함의 디젤엔진은 산소를 소모하기 때문에 물속에서 버틸 수 있는 기간이 길어야 3~4일이다. 한국군 잠수함의 AIP(공기 불요) 시스템은 10일 이상으로 늘려주지만, 북한이 이를 확보했다는 정보는 없다. 태평양을 건너려면 중간중간 부상해야 하고, 그럼 미국 군사위성의 눈을 피할 수 없게 된다.

2010년 8월 서해 합동 해상기동훈련에 참가한 링스 헬기가 소나를 떨어뜨려 잠수함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왼쪽). 5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수중 발사시험과 관련해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왼쪽)이 황희종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메모지를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뉴시스


“Emerging But Not Imminent”


다음으로 미사일을 보자. 5월 8일 사진에 등장하는 모의미사일은 그 크기와 형태로 미뤄 옛 소련의 SS-N-6 잠수함발사미사일을 기반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군사 퍼레이드를 통해 과시한 바 있는 중거리미사일(IRBM) 무수단이 바로 이 모델의 변용이었다. 지대지미사일로 개조가 가능했다면 원래대로 SLBM을 복제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다만 무수단은 시험발사를 포함해 한 차례도 하늘을 날아본 적이 없고, 이는 SLBM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이번에 공개된 실험은 엄밀히 말해 발사시험이 아니라 사출시험이다. 물속 잠수함이 공기 밖으로 미사일을 뿜어 올린 것이다. 그다음 단계로 미사일 엔진이 제대로 점화돼 궤도에 올라야 비로소 능력이 검증됐다고 볼 수 있다. 150m를 날아갔다는 건 점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거나 애초에 그럴 의도가 아니었음을 뜻한다. 이 실험만으로는 신뢰도를 확인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난해 위성사진에 식별된 2000t급 잠수함은 함교 부분 공간의 한계를 감안하면 단 한 발의 미사일만 장착할 수 있다. 재래식미사일로는 의미가 없고, 오로지 핵미사일이어야만 전략적 가치가 생긴다. 그러나 SS-N-6의 탄두 중량은 500kg 미만. 북한이 핵탄두를 이 정도까지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분석이 적잖다.

이러한 변수를 조합하면 북한 SLBM과 관련해 모두 3개의 시나리오를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이 △핵추진잠수함과 이에 장착 가능한 핵미사일 개발에 모두 성공하는 경우 △디젤잠수함에 핵미사일을 장착하는 경우 △디젤잠수함에 재래식미사일을 장착하는 경우다. 논리적으로는 핵추진잠수함에 재래식미사일을 개발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지만, 미사일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온 그간 북한의 기술 경로나 소형 원자로를 개발해 잠수함에 실어야 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사실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첫 번째 시나리오의 경우는 바로 전략핵잠수함(SSBN)이다. 태평양을 건너 미 본토에 직접 핵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병기다. 북한의 최종 목표가 바로 이 지점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완성되면 미국으로서도 마땅한 대응방법이 없다. 북한으로서는 제2격 능력을 확보해 상호 핵 억제를 구축할 수 있게 되는 셈. 그간 주장해온 ‘미제의 핵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이자,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새로운 위상을 얻게 되는 첩경이다. ‘서울을 지키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와 워싱턴을 포기할 수 있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미국의 한반도 핵우산을 흔들겠다는 포석이다.

워싱턴이 그간 북한의 SLBM 개발 노력에 관심을 기울여온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북한 잠수함이 미국 서부해안에 몰래 접근해 주요 도시에 핵미사일을 날리는 악몽 같은 시나리오. 미 의회조사국이 이러한 우려를 심도 깊게 언급한 보고서를 작성한 게 2009년 2월의 일이다. 이번 시험을 공개한 평양의 속내 역시 미국의 그 같은 우려를 자극하기 위해서임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 측 반응은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앞서 말했듯 태평양을 건너기에 북한의 재래식잠수함은 부적합하고, 핵탄두를 탑재하는 일 역시 갈 길이 남아 있다. 외신에 인용된 미국 국방부 당국자가 “(사출시험일 뿐) 탄도미사일 발사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것이나, 북한 군사문제 전문가인 조지프 버뮤데즈 ‘올소스 애널리시스’ 선임분석관이 “떠오르는(emerging) 위협은 맞지만 임박한(imminent) 것은 아니다”라며 “미 본토에 대한 위협을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은 너무 많은 관문이 있으므로 최소 10년은 걸릴 것이라는 게 미국 측 전문가들의 촌평이다.

삼각억제, 거부, Kh-35

두 번째 시나리오는 디젤잠수함에 핵미사일을 장착하는 데 성공하는 경우다. 이 경우 미 본토 대신 한국이나 일본이 주된 위협 대상이 된다. ‘도쿄나 서울의 핵 피격을 불사하고 전쟁을 결심할 수 있는가’, 이름하여 삼각억제(triangular deterrence)다. 이번 실험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 당국자들이 미국에 비해 한층 더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다.

5월 10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국회 브리핑에서 언급한 “실제 개발까지 4~5년 걸린다”는 예상 기간 역시 이러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것이다. 핵추진잠수함 개발에 비해 기술적 관문이 낮은 핵미사일 장착은 예상되는 소요시간도 짧다. 향후 진행될 한국군의 대응책 구축 역시 이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진행될 공산이 크다.

한국군이 준비 중인 KAMD(한국형미사일방어) 체계나 킬체인, 최근 논란이 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가 SLBM에 대해서도 제구실을 하려면, 한미 두 나라의 잠수함 전력이 북측 잠수함 이동 경로를 꾸준히 추적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잠수함 위치를 미리 알고 있어야 미사일 궤도 추적이 훨씬 용이해지기 때문. 구축함과 공중 전력으로 잠수함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낮은 수심까지 떠오르지 못하도록 압박하거나, 징후가 명백할 경우 아예 사전에 격침시키는 작전도 가능하다. 어느 경우든 잠수함을 활용한 대잠전(對潛戰)의 중요성이 훨씬 커진다는 뜻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인 ‘디젤잠수함+재래식미사일’은 가장 개연성이 높다. 군 당국 발표대로 이번 사출시험이 실제 2000t급 잠수함에서 진행된 것이라면 이 미사일에 고폭탄두를 장착해 점화에 성공하는 것만으로 이내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당장 내일이라도 가능한 수준. 다만 그만큼 군사적인 위협도는 떨어진다.

이러한 위력을 가진 잠수함이라면 한미 연합군의 공격 능력을 약화하는 데 주로 투입될 공산이 크다고 전·현직 군 당국자들은 말한다. 유사시 미군의 전시증원 경로가 될 부산 앞바다 등에 은신함으로써 원활한 작전수행에 장애를 주는 게 주 임무다. 상대가 아예 전쟁을 결심하지 못하도록 억제하기보다 공격을 무력화하는 데 주력하는 방식. 군사용어로는 ‘거부(denial)’라 부르는 이러한 전략은 최근 중국이 자국 연안에서 집중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군사교리다.


남는 것은 대량보복 위협뿐


사출시험 이튿날 역시 동해에서 진행된 북한의 함대함순항미사일 시험발사에 눈길이 가는 것은 그 맥락이 같기 때문이다. 1990년대 러시아가 개발한 Kh-35 순항미사일과 닮은꼴인 이 미사일은 유사시 한미 연합군 해상 전력의 접근을 차단하는 게 주된 목적이다. 일각에서는 노동미사일로 알려진 지난해 3월 탄도미사일 발사 역시 정밀도를 높여 지대함용으로 쓰기 위한 실험일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쉽게 말해 원산 앞바다에 미군 항공모함전단이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의도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전쟁이 벌어져도 김정은 체제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보루다. 북한의 핵 보유 개연성이 충분한 상황에서 미국의 선제 핵 공격은 상상하기 어렵고, 위협적인 것은 항공모함에서 발진하는 미사일과 전투기 등 정밀타격 전력뿐이다. 평양이 다양한 방식으로 미사일 능력을 강화하면 동해에 대규모 미군 전력이 투사되는 것을 막아냄으로써 ‘어떻게든 버티는’ 전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번 SLBM 시험발사는 장기적으로는 미국, 단기적으로는 한국을 모두 겨눈 한 수다. 미국의 핵 공격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최종 목표와 전쟁이 벌어져도 김정은 체제는 반드시 수호하겠다는 의지의 결합이다. 획기적인 국면 변화가 없는 한, 앞으로 상황이 세 번째에서 두 번째, 다시 첫 번째 시나리오로 번져나가리라는 사실은 불문가지. 한국군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SOSUS(소나감시체계). 수백 개의 소나를 바다 밑에 미리 깔아둠으로써 잠수함 침투를 감시하는 일종의 조기경보체계다. 미국이 1960년대 자국 연안에서부터 구축하기 시작한 이 시스템은 냉전 말기 전 세계 곳곳의 바다로 퍼져나갔다. 사출시험 소식이 전해진 후 한국군 당국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대비책 가운데 하나는 우리도 이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 대잠전 능력 향상을 위해 핵추진잠수함을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요격률을 높이기 위해 이지스함에 SM-3 요격미사일을 장착해야 한다는 의견마저 제시됐다. 모두 조 단위를 넘나드는 어마어마한 예산이 필요한 사업이다. 길이 67m의 작은 잠수함에서 뿜어 올린 9m 남짓의 소형 모의탄두가 한국에 강요하는 청구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대비로도 ‘완벽한 안전’은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탁월한 감시체계도 바다 밑에 숨은 잠수함을 찾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고, 미국의 미사일방어 체계도 요격 성공률은 검증되지 않았다. 비좁은 전장(戰場) 특성상 ‘한 발도 맞지 않겠다’는 건 불가능한 목표라는 것이다. 그 한 발이 핵일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공포의 근원이고, 평양의 최근 행보는 그 빈틈을 정확히 파고들고 있다. 남는 것은 전쟁이 벌어지면 함께 죽는다는 대량보복 위협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길뿐. 하루가 다르게 끔찍해지는 한반도의 현실이다.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5년 5월 20일자 98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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